지난해 한국의 공연장에서 가장 많이 울려 퍼진 교향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 협주곡은 슈만·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에서 가장 자주 연주된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이었다.

본지가 지난해 국내 교향악단 15곳의 정기 연주회 145회와 해외 악단의 내한 공연을 전수 조사한 결과다. 한국 음악 팬들이 사랑하고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교향곡에서는 '러시아 바람'이 뚜렷했다. 연말 송년 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인 베토벤의 〈합창〉이 8차례로 1위에 올랐을 뿐,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7회)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과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6회) 등 러시아 교향곡이 대거 상위권에 올랐다.

일명 '운명'으로 불리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3회)과 교향곡 6번 〈전원〉(2회),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2회) 등 기존 인기 곡은 줄어든 대신, 부천 필하모닉의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시리즈와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연주 등으로 레퍼토리 이동 현상도 감지됐다.

하지만 협주곡에서는 '편식 현상'이 심했다. 슈만과 그리그, 멘델스존의 협주곡 외에 차이코프스키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 일부 인기 곡이 4차례 연주되며 쏠림 현상을 보였다. 베토벤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은 골고루 사랑받았지만,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2번은 각각 1차례에 그친 것도 이채로웠다. 〈11시 콘서트〉 같은 아침 음악회나 청소년 음악회의 단골 연주곡으로 이동한 것으로 음악계는 보고 있다.

해외 유명 악단 내한 공연의 경우, '비창 신드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지난해 3월 런던 필하모닉과 BBC 필하모닉 ▲5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심포니 ▲11월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까지 사실상 연중 내내 울려 퍼졌다. 100여 명의 단원이 이동하고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투어 공연의 특성상, 보다 넓은 관객층이 즐길 수 있도록 레퍼토리 선정도 다소 보수적으로 구성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음악 칼럼니스트 황장원씨는 "국내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가 일부 인기 작곡가의 작품에 몰려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부천 필의 전곡 시리즈나 서울시향의 현대 음악 연주처럼 탄탄한 기획을 통해 레퍼토리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