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6년 발생한 김포공항 테러는 북한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받은 테러리스트 아부 니달 조직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고 월간조선 3월호가 보도했다. "아부 니달이 북한의 청부를 받고 김포공항 테러를 자행했다고 자백했다"는 기록이 발견된 것.
2002년 이라크에서 사망한 아부 니달은 오사마 빈 라덴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이슬람권에서 가장 잔인한 테러리스트'로 알려져 있었다.
김포공항 테러는 서울아시안게임 개막 1주일 전인 1986년 9월 14일, 김포공항에서 폭발물이 터져 5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 당시 정부는 이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지 못했지만, 서울아시안게임을 방해하고 종국적으로는 88서울올림픽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 공작원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스위스 베른신문사의 무라타는 김포공항 폭파사건을 조사한 보고서를 베를린의 '구(舊)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STASI) 자료관리 연방정부 특명센터'에서 찾아냈다. 이 보고서는 김포공항 테러 직후, 독일의 프란츠 대령이 지휘하는 슈타지의 한 부서(22국)가 김포공항 폭파사건에 대해 조사한 것이다. 보고서 안에는 22국의 한 간부가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 아부 니달을 신문한 기록도 있는데, 아부 니달은 신문과정에서 북한의 청부를 받고 조직원을 시켜 김포공항을 테러했다고 자백했다.
슈타지의 조사에 따르면 아부 니달이 이끄는 테러조직이 북한 당국으로부터 김포공항 청부를 받은 것은 1985년 말이었다. 아부 니달은 조직 내 서열 2위이자 테러 담당이던 슐레이만 삼린에게 실행을 지시했다. 슐레이만 삼린은 테러용 폭탄을 잘 만드는 아부 이브라힘에게 폭탄제조를 지시했고, 이브라힘은 동거중이던 서독 적군파 요원 프레데리케 크라베에게 폭탄운반 임무를 맡겼다.
크라베는 영국인으로 위장해 김포공항에 입국했고, 폭탄을 5·6번 게이트 사이 쓰레기통에 놓고 홍콩으로 출국했다. 김포공항 폭파사건이 성공한 후 북한 정권은 스위스에서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한 은행의 아부 니달 비밀계좌로 500만 달러를 송금했다.
이러한 청부거래는 아부 니달과 김일성의 친분 때문에 가능했다. 1937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근처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하산 사브리 알 바나. 1967년부터 야세르 아라파트의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에서 일한 그는 공산국가들의 지원을 받아오라는 아라파트의 지시에 따라 1972년 3월 28일부터 4월 8일 사이에 김일성을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은 '빨치산'에 대해 공통된 의견을 보이며 가까워졌고, 김일성은 이후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지원하며 아부 니달을 '중동에 심은 자신의 대리인'으로 믿었다. 니달도 그 후 평양에 사무실을 내고, 테러리스트들을 북한에 보내 군사훈련을 받도록 할 정도로 두 사람은 가까웠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3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