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창간 초기부터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신문 제작에 활발하게 접목(接木)해왔다. 1920년대 조선일보에는 이미 '활동사진 취재반'이 있었다. 이들은 1926년 6월 10일 순종황제 장례식을 촬영해 극장에서 상영했다. 한국 언론에서 처음 시도된 '동영상취재'였다. 이후 조선일보는 '조선일보 뉴-쓰'라는 필름을 만들어 상영하기도 했다. 1934년 여름에는 남부지방의 수해(水害) 현장에 영상 취재반을 급파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현장 참상을 눈앞에 보이는 듯이 보도함에는 일반의 방법만 가지고는 만족할 수 없음으로, 이에 조선 신문계의 첫 시험으로(…)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촬영을 단행케 되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조선일보에는 한국 신문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것들이 많다. 라디오 시험 방송 전파를 서울 하늘에 처음 쏘아 올린 것도 조선일보였다. 1924년 12월 17일부터 사흘간 방송된 이 시험방송의 아나운서는 한국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씨였다.
1924년 10월 13일에는 '멍텅구리-헛물켜기'라는 신문 최초의 네 컷 연재만화를 통해 식민지 치하(治下)에서 고통을 겪던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국제 전화와 경비행기를 취재에 처음 이용한 것도 조선일보였다. 1938년 2월에는 화신백화점 옥상에서 국내 처음으로 전광판 뉴스를 내보냈다. 한국 언론사(史) 권위자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는 "조선일보는 늘 새로운 시대에 맞춰 매체 발전에 관심을 기울여왔다"면서 "디지털 시대에도 종이 신문의 장점을 살리고 신문 산업의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