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중학생이 되었다. 유난히 가까이 지내던 조카라서 교복 입은 모습이 보고 싶었다. 또래에 비해 키가 크고 성숙되 보이는 조카의 교복 입은 모습은 제법 어른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이모인 나로서는, 흉악범이 유난히 속출하는 요즘 세상에 이 아이의 치마가 누가 될까봐 걱정이 앞섰다. 밤늦게 귀가할 수밖에 없는 요즘 학생들의 뒷모습은 너무나 성숙해 보여서 나조차도 조마조마 할 때가 있다.
왜 여학생들의 교복은 치마일까? 심지어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짧아지는 교복 치마. 책상 밑으로 보이는 제법 성숙한 소녀들의 종아리들 앞에서 남선생님들은 어디다 눈을 두게 될까? 이건 너무 심한 기우인가?
알고 보니, 교복을 바지로 맞출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나이 때 아이들은 소수의 선택을 받아들일 만큼 성숙하지는 못하기에 바지 교복은 놀림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뭐, 교복 치마 하나 가지고 째째하게 이러쿵 저러쿵 하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게 그건 너무 큰 사고의 기초다. 그 나이 때는 아직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았는데 왜 그 때부터 사회가 여성성을 강요하는 것일까? 한겨울 아무리 스타킹을 겹 입어도 펄럭거리는 교복 치마 밑으로 찬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것을 왜 참아야만 하는 것일까? 왜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암암리에 지시하는 것일까? 물론 분명히 선택권을 줬다고 선택은 자유였다고 발뺌을 하겠지.
난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다. 그 시대는 교복과 자율화 속에서 고민하던 시기였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자유와 개성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1년간 교복을 시험해 보신 이후 교복을 아예 폐지하셨었다. 그때는 몰랐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멋진 분이다. 이 사회에서 부족한 부분을 정확하게 피력하신 그 분의 안목에 뒤늦은 감사를 보낸다.
고등학교3년 동안 치마를 입었던 기억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인 나에게 치마 교복은 너무 가혹한 형벌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상하게도 치마를 입은 날은 발걸음도 말소리도 달라지게 된다. 보다 상냥하고 조심스러워 진다고나 할까? 혹시 이런 이유에서 치마를 입히는 것이라면 더욱 더 화가 치민다. 물론 여학생들이 과격하게 생활 한다면 그것 또한 보기 좋을 수는 없지만 그건 남자건 여자건 마찬가지이다.
교복 입는 것 자체가 나에겐 이미 자유로운 사고가 포박당한 것이지만 기꺼이 입는 사람들이 있으니 거기까지 뭐라 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적어도 추위에 대한 방어는 해야 하지 않을까? 유난히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에 외모에 쏟을 관심과 시간을 학업에만 쏟으라는 의미도 있다는 생각에 또 한번 안타까움을 느낀다. 학교에 학원에 하루 종일 최소 6년간 시달리는 그들은 그 스트레스를 과연 어떻게 해결하고 살까? 학부모건 학생이건 그 힘겨운 시간들을 과연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 것일까? 다들 왜 그래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조차 던질 여유가 없어 보인다.
제복이나 획일적인 그 어떤 것, 자유를 구속하는 일방적인 지시 등에 유난히도 민감한 이유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불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 비판 없이 광신하고 따라가고 또 그런 순진무고한 사람들의 습성을 이용해 무조건 제도로 구속하려는 모습을 보면 참 외롭다.
읽는 사람 생각도 안하고 인터넷에 글을 올려 결국 스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은 멀쩡히 살아 돌아다니고, 경제에 대해 좀 논했다고 몇 달 째 갇혀있는 사람도 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보다 소개하는 통신사가 더 많은 이익을 착취하고 있는 모습도 기형적이다. 이제 우리 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세상이 되어도 되지 않을까?
테크놀러지의 발전 속도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반만큼이라도 문화적, 사회적 의식 수준의 성장과 다른 분야의 발전이 뒷받침 해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