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개교한 경기 성남시 판교동 판교중학교는 3학년 학생이 딱 2명이다. 앞으로 중간고사를 치르면 한 명은 '전교 1등', 다른 한 명은 '전교 꼴찌'다.
16일 오전, 이 학교 3학년 1반 교실은 적막했다. 40명 정원 교실에 학생은 달랑 2명. 국어교사가 시 '논개'에 대해 판서하자, 칠판에 분필 부딪치는 소리가 교실 전체에 울렸다. 창문 밖으로는 축구 골대도, 농구대도 없는 3500㎡(1050여평)짜리 텅 빈 운동장이 보였다.
이 학교 구승환(53) 교감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두 합쳐도 36명밖에 안 된다"며 "교무실, 양호실, 식당, 교실 3개 등 학교 시설 일부만 가동하고 빈 교실 16개는 아예 자물쇠를 채웠다"고 했다.
2006년 아파트 분양 당시 '로또'라고 불릴 만큼 인기가 높았던 판교신도시 초·중학교들이 학생이 없어 거의 텅 빈 상태로 이달 초 일제히 개교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의 내신 성적과 토론 수업에 문제가 생기고, 소규모 그룹 과외 같은 수업이 이뤄지는 등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2005년 본격적으로 공사에 들어간 판교 신도시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동·하산운동·삼평동 일대 929만4000㎡(281만6363평)에 걸쳐 43개 단지가 들어선 대형 신도시다. 수용 가능 인구는 8만7000여명이다. 2006년 청약 당시 경쟁률이 최고 2000대 1까지 치솟을 만큼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주민들 입주가 늦어졌다.
지난해 12월 입주가 시작된 8개 단지 3837가구는 입주율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44%다. 입주가 끝난 4개 단지도 입주율이 절반을 간신히 넘긴 54%에 그쳤다. 다음달까지 입주 기간이 남은 4개 단지도 한 집 건너 한 집이 텅 비어 있다.
낙생초등학교와 산운초등학교는 전교생이 각각 31명과 50명에 불과하다. 사정이 나은 다른 두 초등학교도 전교생이 200명에 못 미친다. 운중중학교와 삼평중학교 역시 전교생이 74명, 108명씩이다. 판교중까지 합쳐서 이번에 개교한 7개 초·중학교는 정원 630~1260명으로 예상하고 건물을 지었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7개 학교를 짓는 데 들어간 돈은 총 1137억원이다.
판교신도시가 생기기 전인 지난 1976년 개교한 낙생고등학교는 전교생이 1200명이다. 주로 분당신도시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이다.
문제는 학생들이 교과성적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중학교 교과성적은 기본적으로 '석차/재적 학생수×100'으로 산출된다. 3학년 전체 인원이 2명인 판교중의 경우 2등을 하면 곧 전교 꼴찌가 돼 최하위 성적을 받는다. 전교 1등을 한다 해도 '상위 50%'다. 운중중학교와 삼평중학교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교육청 고입관리팀 이동흡(50) 장학사는 "학생 수가 많을수록 교과성적이 유리한 건 사실"이라며 "학생 수가 적은 학교에 대한 예외규정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많이 전입해 오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판교중 3학년 이윤환(16)군은 "전교 꼴찌가 될까 봐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빨리 다른 친구들이 전학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토론수업이나 조별수업을 하기도 쉽지 않고, 비용을 분담할 학부모 수가 적어 방과후 수업도 부담이 된다. 학교 운영예산이 학생·교사·학급 수 등을 기준으로 배정되기 때문에 판교신도시 외부의 학교보다 예산도 적은 편이다. 판교중 이혜정(여·39) 행정실장은 "예산이 빠듯해 1~3층에 한 대씩 총 3대를 놓아야 하는 정수기를 3층에 한 대만 설치했다"고 했다. 오준석(11·낙생초 4년)군은 "4학년 전체가 4명밖에 안 되고 남자는 나 혼자라서 심심하다"고 했다.
학생 수가 적어 오히려 좋다는 반응도 있었다. 두 자녀를 운중초등학교에 보낸 박혜경(여·38)씨도 "학생이 적어 아이들끼리 잘 놀고, 학교 수업도 과외받는 것처럼 좋다"며 "앞으로도 인원이 너무 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