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가 가슴에 손을 얹고 국민의례를 하는 사진이 9일자 홍콩과 대만 신문에 일제히 실렸다.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저의 집(권양숙 여사)에서 부탁해 (박연차 회장의) 돈을 받아서 사용했다"고 고백했다는 기사는 국제면 톱 또는 주요 기사로 배치됐다.
대만의 연합보(聯合報) 인터넷판은 "한국도 우수전 판박이? 노무현, 부인이 돈 받았다 고백"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우수전(吳淑珍)은 2000~2008년 대만 총통을 지낸 천수이볜(陳水扁)의 부인 이름이다. 뇌물수수와 해외 돈세탁 혐의로 구속된 천 전 총통이 지난 몇 달간 재판을 받으면서 "뇌물도 아내가 받고 돈 관리도 아내가 해서 나는 모른다"며 부인에게 떠넘긴 태도를 빗댄 제목이다.
홍콩 명보(明報)는 "천수이볜 사건의 복제판, 한국의 전(前) 제1부인 수뢰"라는 제목으로 아예 한 면을 할애했다. 비교표까지 만들어 천 전 총통이 구속되고 부인과 아들, 며느리, 사위와 처남이 소환됐듯이 노 전 대통령 형님은 이미 구속됐고 부부와 아들, 조카사위까지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노 전 대통령은 '클린 이미지'로 집권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부패는 아직도 한국정치에 전염병(epidemic)처럼 남아있다"고 꼬집었다.
사실 중화권 언론들은 두 사람이 재임할 당시에도 자주 비교했다.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둘 다 변호사 출신에 달변이고 체제에 저항하다 구속된 전력, 당선 때까지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는 국내파, 분단 이후에 태어난 분단국의 젊은 지도자라는 점, 근소한 표차로 집권한 직후 탄핵 위기까지 몰렸다가 거꾸로 집권당을 키운 점, 국민 속을 뒤집어 놓는 특유의 말투, 일부 역사를 부정하고 뒤집으려 했다는 점, 야당에 연정(聯政)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일, 경제정책 실패로 국민을 힘들게 했다는 점 등 닮은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천 전 총통이 친미반중(親美反中) 정책을 폈고, 노 전 대통령이 반미친북(反美親北) 노선을 걸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천 전 총통은 대만 남부 타이난(臺南) 출신인 일용 잡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국립 대만대학에 입학 후 3학년 때 최우수 성적으로 법률고시에 합격해 4학년 때부터 변호사로 활약했다. 대만 정부의 정당결성 금지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한 재야인사의 변호를 맡으면서 유명해졌고, 1985년에는 직접 반체제 잡지를 만들다 붙잡혀 8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상고만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 판사와 변호사를 지낸 노 전 대통령이 1987년 시위 도중 사망한 노동자 사건을 맡았다가 49일간 구속됐던 전력도 흡사하다.
공교롭게 퇴임 이후도 비슷하다. 둘 다 청렴 이미지로 집권에 성공했지만, 집권 기간에 청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 마을에 새집을 짓고 내려갔듯이 작년 5월 물러난 천 전 총통도 고향에 새집을 짓고 살았다. 하지만 천 전 총통의 현재 거처는 대만의 수도 외곽에 있는 투청(土城)구치소다. 작년 11월 그가 대만 역사상 최초로 구속되는 전직 총통이 됐을 때 대만 언론들은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된 사례를 상세히 보도하면서 8년간 나라를 이끌던 권력자를 구속한 낭패감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제 비교 대상이 노 전 대통령으로 옮겨왔다. 과거에도 그랬으니 새로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최종 결말이 구치소행(行)은 아니길 빌고 싶다. 두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셋이나 구속하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한국 사회가 또다시 국제적인 망신을 살까 두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