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의 돈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손을 댈 수 있다고 여긴 듯싶다. 과거 뇌물(賂物) 수수나,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선 권력이 기업을 어르고 달래고 팔을 비튼 끝에 불법 자금을 뜯어내거나, 대가를 약속한 뒤에 돈을 받았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측에선 박 회장의 금고(金庫) 안에 있는 돈을 마치 자신들이 맡겨 놓은 것인 양 찾아가곤 했다.

박 회장 역시 그들이 자기 금고에 든 돈을 응당 받아야 할 듯이 대했다. 박 회장은 2007년 8월 서울 한 호텔에서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계획을 논의하던 중 강금원 회장이 "50억원씩 내자"고 하자 "홍콩에 있는 500만달러를 가져가라"고 했다고 한다. 박 회장은 홍콩 계좌에 들어 있던 6000여만달러 가운데 500만달러는 처음부터 '노 전 대통령의 몫'인 것처럼 생각한 모양이다. 권력자들이 불법 자금을 받아가면서 당연히 받을 것을 받아가는 듯 태연한 것은 과거에 없던 노무현 정권의 새 풍속이다.

박 회장은 턱없이 돈에 후한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는 더 깊은 계산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돈 금고'를 노 전 대통령 일족과 함께 쓰도록 열어준 대가로, 노 전 대통령의 '권력 금고'를 함께 쓰자고 한 것이다. 그는 이 권력 금고에서 돈 되는 정보와 인·허가권을 마음껏 빼내 썼다. 박 회장은 2005년 6월 세종증권 주식 110억원어치를 사들였다가 6개월 뒤 농협의 인수 발표 직전에 팔아 259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2006년 1월에는 농협의 알짜배기 자회사인 휴켐스를 더 높은 입찰 금액을 제시한 경쟁회사들을 제치고 인수했다. 박 회장이 2005년 경남 진해시의 옛 동방유량 부지를 헐값으로 사들였다가 얼마 후 고도제한이 완화되면서 40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은 '권력 금고'와 '돈 금고'를 함께 쓰는 동업자(同業者)였다. 이런 식으로 한 나라의 대통령과 수상쩍은 장사꾼이 돈 금고와 권력 금고를 함께 사용한 경우는 세계 역사에서 드물 것이다. 검찰 수사는 지금 노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이 박 회장 금고에서 꺼내 쓴 돈에 대해 집중돼 있지만, 박 회장이 대통령의 '권력 금고'에서 뭘 꺼내 무엇을 챙겼는지도 밝혀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