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면에 매일 나오는 '八面鋒(팔면봉)'의 의미와 유래가 무엇인가요? 인터넷엔 「중국의 역대 제왕 및 유명한 인사들의 약전(略傳)을 기록한 책인 '고금역대촬요(古今歷代撮要)'를 팔면봉이라고도 한다」는 설명만 나오는데, 조선일보에선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 건가요?

― 서울 강남구 독자 강호연씨

김명환 조선일보사사료연구실장

A: 모든 방면의 급소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글귀

'팔면봉'(八面鋒)은 조선일보 1924년 10월 3일자부터 1면에 싣기 시작해 85년째 이어오는 명코너입니다.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당시 관계자들이 밝힌 기록이 전해지지 않습니다만, '팔면봉'이란 옛 지식인들 사이에서 "세상사 여러 분야에 관해 솜씨 있게 써낸 글'이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독자가 언급한 '고금역대촬요' 이외에도, 중국 남송(南宋) 때 지어져 제왕들의 필독서이자 과거시험 참고서가 됐다는 '치국방략'(治國方略)의 다른 이름이 '팔면봉'(八面鋒)이었습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책략들을 집대성한 책'이란 뜻이었지요. '팔면'(八面)이란 동양 사상에서 '모든 방면'이며 칼끝을 뜻하는 '봉'(鋒)은 '필봉'(筆鋒) 즉 '힘 있는 글'을 뜻합니다.

'팔면봉'은 급소를 찔러대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힘과 맛을 독자에게 안겨왔습니다. 억압받던 일제하에서 신설한 것은 짧은 독설로 저항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924년의 '제1호' 팔면봉도 "공갈, 사기, 횡령, 문서위조 등을 전문으로 하는 자(者)가, 부업(副業)으로는 부산경찰서 보안주임질도 하얏다나" 라고 부패 경관을 비아냥댔습니다.

가시 돋친 독설을 내놓던 일제 때 팔면봉은 4차례나 압수당했습니다. 강제 폐간되면서 1940년 8월 10일자로 낸 조선일보 폐간호의 팔면봉도 화제였습니다. "비바람 겪어서 이십춘, 이십추(二十春, 二十秋), 1일에 일갈(一喝), 이 몸의 사명도 오늘로 종언(終焉)"이라며 20년 세월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고 아파했습니다.

한때는 짧은 시사칼럼 형식도 취했지만 1952년 6월 19일자부터 '촌평 묶음'으로 정착됐으며, 현재는 정치·사회·국제부장이 각각 한 건씩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