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강원도 인제군 한계리 일대 도로에 세워진 차량 안에서 남녀 3명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테이프를 붙여 밀폐시킨 창문에는 습기가 가득했다. 차 안에서는 연탄 화덕 2개와 함께 이들이 남긴 유서가 발견됐다. 우울증과 스트레스, 사업실패와 이혼이라는 서로 다른 이유를 가지고 만난 이들은 이날 함께 자살을 택했다.
최근 강원도와 부산 등지에서 동반자살이 잇따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 8일 정선(4명), 15일 횡성(4명), 17일 인제(3명)에 이어 19일 부산에서도 20대 남성 2명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 동반자살을 택한 이들이 사전에 면식이 없었던 점으로 보아 이들은 인터넷 자살사이트에서 만나 함께 ‘자살 여행’을 떠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로 인해 ‘자살사이트’나 ‘자살카페’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지만, 포털사이트에는 이러한 카페나 클럽이 여전히 개설돼 있었다.
◆ 인터넷 ‘자살 클럽’ 들어가 보니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지난해 5월 개설된 클럽을 들어가 보았다. 이 사이트는 원래 자살 사이트가 아니었다. 일반 친목 사이트였다. 하지만 사이트명이 '자살클럽'으로 등록돼 개설 직후 자살예방협회에서 폐쇄를 요청했다. 포털사이트 측에서는 ‘이 사이트가 자살과 관련없다’ 판단하고 사이트를 폐쇄하지 않았지만, 회원들의 사이트 활동이 뜸해지자 지난해 10월부터 자살 관련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총 17건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게시글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글마다 100번 내외의 열람 기록이 남아 있었다.
특히 4월에 올라온 글 2건은 ‘같이 가실 분’, ‘저랑 같이 가실 분 있어요?’라는 제목으로 동반자살을 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동반자살을 계획한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혼자서는 용기가 안 나서 같이 갈 사람을 모집합니다”, “마음은 있으나 실행이 힘드네요. 전국 어디라도 가겠습니다” 등의 내용으로 글을 올렸다.
자살 방법에 대한 글도 있었다. "청산가리(시안화칼륨)을 구한다", “하루 종일 연탄자살을 알아보는데,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것보다 다른 분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방문자들은 신원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 별명(닉네임)을 사용했고, 서로 인터넷 쪽지 보내기로 연락한 뒤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 쪽지를 보고 글 남겨
기자가 닉네임을 사용해 사이트에 가입해 접촉을 시도해봤다. 그러자 다음날 4통의 쪽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중에 "ooo님하고 저하고 갑니다. ooo님 연락처는 01X XXXX XXXX이고요. 같이 가시려면 연락주세요. 제 핸드폰 정지돼서 못씁니다. ooo님하고 저하고 오늘 만나기로 했음"이라는 내용의 쪽지가 눈에 띄었다.
쪽지를 받고 전화를 해봤지만 해당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사이트 폐쇄 직전까지 사이트 방문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자살예방협회 측에 문의한 결과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복지콜을 통해 상담으로 해결 방법을 모색해 보자는 말을 들었다. 보건복지부 측에서는 상담보다는 경찰에 신고를 하는 편이 낫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관할 경찰서 사이버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쪽지 내용에 대해 제보를 했다. 경찰 측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포털 사이트의 협조를 받아 조사를 해본 뒤 자살 방조죄가 성립하는지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대법원 2005도 1373 판결 등)에 따르면 자살방조죄는 자살하려는 사람의 자살행위를 도와주어 용이하게 실행하도록 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을 말한다.
◆찾기는 쉬워도, 단속은 어려워
자살예방협회를 통해 신고 접수된 사이트는 지난 2007년 480건에서 지난해 849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에는 현재까지 267건의 자살 사이트 신고가 접수됐다. 이들 사이트는 끊임없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접근이 어렵지 않다.
현재 포털사이트 ‘자살’이란 키워드를 입력하면 보건복지부와 자살예방협회에서 개설한 자살예방 상담사이트가 가장 먼저 검색된다. 실제로 네이버와 다음 등에서 '자살'을 검색하면 유해 정보로 분류되어 관련 내용을 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블로그, 카페 등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유명 포털사이트의 클럽 및 카페 주소에서 자살을 연상할 수 있는 영문 주소만 덧붙이면 이러한 클럽과 카페를 찾을 수 있다.
자살예방협회 장창민 과장은 “현재 동반자살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유는 인터넷을 통한 공모가 쉽기 때문”이라며 “최근 들어 모 연예인의 자살 방법이 그대로 모방되는 등 이를 여과하지 않고 보도하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밝혔다.
장 과장은 이어 “신고 사례처럼 자살을 연상시키는 영문 단어도 금칙어로 포함할 것을 포털 쪽에 꾸준히 권고하고 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경찰, 포털 사이트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해당 사이트를 자살예방협회와 포털 사이트 측에 신고했다. 자살예방협회에서는 이렇게 접수된 내용을 해당 포털 사이트 측에 곧바로 통보한다. 해당 포털 사이트에서는 신고 2시간만에 사이트 폐쇄를 결정했고, 현재 폐쇄가 진행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