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엘라 옷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건, "해체주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그의 옷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와 아울러 "나는 브랜드 이름에만 눈먼 '된장'은 아니다"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로 불리는 벨기에 출신의 마틴 마르지엘라(Margiela·52). 그가 패션 관계자들의 애를 태우는 건 또 다른 이유에서다. 절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거의 모든 인터뷰를 사절한다는 것. 때문에 '엄청난 추남'이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함께 작업한 모델들은 "큰 키에 각진 턱이 매력적인, 전형적인 북유럽 스타일 미남"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가 그의 이름 대신, 회사 이름인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MMM)'를 내거는 조건으로 이메일 인터뷰에 응했다.

회사 이름에 '메종(maison·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듯, 그는 인터뷰 내내 '나' 대신 '우리'를, '디자이너' 대신 '협력 집단'을 강조했다. '해체주의 작가'라는 수식어와는 달리 "실제로는 '해체'보다는 '구성'에 관심이 있다"는 MMM. 그들의 모토는 이렇다. "모든 확실한 것에 의구심을 가져라. 예상치 못한 것을 예상하라.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을 가라."

‘흰색의 대가’다운 시도. 입을 수 있을까 싶지만 곧 유행할 수도 있다. 2009 가 을 컬렉션(사진 마지막).‘20주년 기념’으로 열린 2009 봄·여름 컬렉션에선 모든 모델들의 얼굴을 가렸다.

1988년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쇼 이후 MMM에겐 '재활용의 대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쓰레기통이나 벼룩시장에나 어울릴 누더기가 해체되고 다시 접합되면서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옷으로 태어났다. 뒤집어 입은 듯 솔기를 겉으로 드러내거나, 병뚜껑·포스터 등으로도 옷을 만드는 기이한 솜씨의 소유자다. 그가 잠시 수석 디자이너로 일했던 '에르메스'의 장 루이 뒤마 회장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재단사"라고 평가했다.

알렉산더 맥퀸, 마크 제이콥스, 프라다까지 그의 스타일을 베낀(혹은 '영감'을 받은) 옷을 내놓고 있다. "그런 일들을 우리도 잘 알고 있다"며 "당신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대단히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우리 작품을 통해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MMM은 고집이 센 편이다. 다른 메이커들이 '슬림화'를 추구하며 같은 사이즈의 옷을 예전보다 좀더 꽉 끼게 만드는 요즘에도 MMM은 기준이 되는 신체 사이즈를 바꾸지 않고 있다. "옷이 그 사람에 맞아야지, 사람이 그 옷에 맞춰야 하는 건 아니다." 시도하긴 어렵지만 한 번 입으면 마니아가 되는 것도 그런 이유가 바탕이 됐을 것. 최근 불황에도 MMM은 1분기 중 전년대비 121%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집' 안에 머물렀던 그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조짐이다. 인테리어 전문 라인인 'MMM home'을 공개한 데 이어 로레알과 제휴, 'MMM 향수'를 선보일 예정. "우리는 전문가이면서도, 또 이번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이든 우리를 따라줄 수 있는 '근성'(그들은 'guts'라는 단어에 따옴표로 강조해놨다) 있는 파트너를 찾길 원했다. 운 좋게도 또한 놀랍게도 로레알은 이 둘을 모두 갖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만약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오늘 무엇을 하겠는가." 개인적인 것에 전혀 답하지 않겠다는 그였기에 혹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까 해서였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던 뉴욕타임스 평가대로 그들은 또 이렇게 달아났다. "눈 감고 그냥 잠을 자겠다. 영원히."

◆ 뉴욕타임스가 밝혔다… 앗! 이건 마르지엘라?

해체와 레이어드가 2008년 마크 제이콥스 컬렉션에서 다시 보인다.

PFIN 제공

반데보르스트의 플라스틱 소재 코트는 마르지엘라의 재활용 쓰레기 봉투 코트에서 따왔다.

마르지엘라의 검정 꽃무늬 카디건과 거의 흡사한 준야 와타나베의 컬렉션.

마르지엘라의 모헤어 조끼가 생각나는 2007년 프라다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