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코너의 뱃속에서부터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를 거쳐 은둔에 몰두했던 청년기까지 우리가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통해 본 것은 인간 저항군의 영웅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존 코너’의 험난한 성장기다. 어린 존 코너를 살해하기 위해 기계군단이 보낸 미래의 로봇에 대항해 역시 미래의 그 자신이 보냈다는 또 다른 로봇은 처절한 사투 끝에 존 코너를 지켜낸다. 그리니까 우리들은 여태 주인공의 아역 시절을 본 것이다. 본격적인 일들은 미래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걸 아직 보지도 못했다.

영화 ‘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은 1984년 처음 발표된 ‘터미네이터’ 1편 그 이전의 이야기, 그러니까 ‘프리퀄’이자 처음으로 현역 ‘존 코너(크리스찬 베일)’의 다 자란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시리즈다. 1편에 이은 2편의 눈부신 성공으로 거대한 세계관이 만들어진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모진 성장기를 거쳤고 어머니의 혹독한 군대식 가르침으로 어엿하게 성장한 존 코너. 드디어 만난 그의 모습에 채 감격하기도 전에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기계군단의 비밀 실험 기지 ‘스카이넷’에 침투해 최신 터미네이터, T-800 생산 계획을 알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함정에 빠져 또다시 죽을 고비를 넘기는 존 코너의 수난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인간 저항군의 핵심 인물로 기계와의 전쟁을 이끌어야 하는 존 코너에게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임무가 있다. 바로 자신의 어머니를 지켜내야 할 전사이자, 자신의 아버지이기도 한 젊은 ‘카일 리스(안톤 옐친)’를 찾아야 하는 것. 그를 찾아 지키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토록 중차대한 일에 새로운 인물이 껴들었다. 초토화된 스카이넷에서 살아나온 ‘마커스 라이트(샘 워싱턴)’다. 2003년 사형수였던 마커스는 모종의 실험에 자신의 몸을 기증하고 15년 뒤 깨어난 것이다.

영화에선 다 자란 아들 존 코너와 그보다 훨씬 어린 젊은 아버지 ‘카일 리스’와의 만남, 그 순간을 향한 온갖 액션과 최첨단 CG의 향연이 펼쳐진다. ‘트랜스포머’의 제작진이 영화 속 기계군단을 보고, 자신들의 로봇 캐릭터와 비슷한 것 아니냐며 이의를 제기할 만하다. 그만큼 이번에 등장하는 기계군단, 터미네이터들은 종류도 다양하고 크기도 엄청난 데다가 심지어 빠르기까지 하다. 액션의 강도는 터미네이터 시리즈 사상 최고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뭔가 의미심장해 보였던 ‘마커스’라는 캐릭터가 일회성으로 단명하는 것은 아쉽기 그지 없다. 팬들은 ‘마커스’라는 캐릭터를 이용해 터미네이터의 세계관을 좀 더 깊고 넓게 확장 시켜주길 바랐던 마음이 컸을 테니 말이다. 그것은 곧 그동안 ‘매트릭스’ 시리즈나 ‘본’ 시리즈에 다소 밀려나 보였던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명성이 눈부셨던 영광의 1991년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 당시로 회복되기를 바라는 열망이기도 할 것이다.

팬들의 이 한 맺힌 열망은 아마도 ‘터미네이터 5’가 공개될 때까지 잠시 미뤄둬야 할 것 같다. 아쉽긴 하지만 존 코너와 카일 리스의 감격적인 만남, 그리고 마커스의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그 열망을 일단 조금이나마 달래면서, 화면 가득 펼쳐지는 액션의 스펙터클만큼은 온전히 만끽하기를 권한다.

5월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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