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가 될 지 모르겠지만(?) 연예인과 인터뷰한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TV에서 늘상 봐 왔던 포근한 이미지 때문일까. 28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마더'(봉준호 감독)의 타이틀롤 김혜자. 스크린 속에서 살인 누명을 쓴 아들을 위해 사투를 벌이던 그녀는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칸 영화제 참석 등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피곤함이 엿보였지만, 개봉을 앞둔 기대감에 설레는 모습은 신인배우나 진배 없었다.
"엄마의 이야기죠. 어머니는 본질이 다 똑같잖아요. 다만 아들 때문에 평안한 나날이 없는 엄마, 그래서 새끼를 위해서 짐승처럼 변하는 그런 엄마…."
어머니 연기라면 대한민국에서 그녀를 따라갈 배우가 드물다. '국민 어머니'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말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그냥 '어머니 역도 잘 하는 배우'라고 불리고 싶었어요. 또 반복되는 일상적 엄마 연기에 지쳐 있었거든요. 뭐 권태감이랄까…."
영화 '마요네즈' 이후 10년 만의 영화 출연이지만, 그 사이 충무로에서 러브콜이 몇 차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늘 해오던 죄다 '된장국 냄새 나는' 엄마 역이라 정중하게 사양했다.
이런 그녀의 응고된 심장을 흔들어놓은 이가 바로 봉준호 감독이다. 5년 전 첫 제의를 한 이래 '잊어버릴만 하면' 찾아와 '마더'를 상기시켜줬다. "축 늘어져있던 세포가 다시 살아났다고 할까요. 딱딱하게 굳은 땅을 막 파헤쳐 영양분이 다시 생겨, 꽃들이 잘 자라게 된 듯한 느낌이에요."
봉감독과의 만남은 우연적 필연이었다. 대학시절 우연찮게 김혜자의 홍대 집 근처 오피스텔에 살면서 대배우를 흘낏흘낏 바라보며 '연정'을 키웠다는 봉감독은 "선생님 안 하시면 이 영화를 아예 접겠다"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봉감독은 매우 정확한 사람"이라고 요약한 그녀는 "어른이라고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배우를 자기가 원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요. 그런데 그게 일방적인 게 아니라 서로간의 교감속에서 해내더라고요"라고 덧붙인다.
'마더'를 보면 나오지만 그녀는 촬영 내내 엄청 뛰어다녔다. 또 밥때를 놓치면 에누리 없이 굶어야해서(?) 항상 챙겨먹은 덕분에 몸도 정신도 건강해졌다며 환하게 웃는다.
"'마더'는 보는 이에 따라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이에요. 그리스 비극도 연상되고…. 그래서 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친 김에 한 1500만 동원해 흥행 기록 1위를 갈아치웠으면 좋겠어요. 너무 욕심인가요?(웃음)"
마지막으로 앞으로 또 어떤 엄마를 연기하고 싶냐고 물었다. "제가 여운이 오래 가는 편이라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어요. 영화를 다시 찍을지 이게 마지막이 될 지 그것도 지금은 전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네요."
늘 대중 곁에 머물며 위로와 평안함을 주었던 배우 김혜자. 그녀의 변신이 더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