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장년층이라면 1960년대 유·소년기를 나며 만화방에서 만났던 친구와 영웅들을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의사 까불이'(김경언)는 키 크는 약, 날씬해지는 약들을 맘대로 발명해 소동을 벌였다. 수퍼맨의 'S' 자 대신 'ㄹ' 자를 가슴에 단 '라이파이'(산호)는 레이저 총으로 악당을 물리치는 토종 공상과학 영웅이었다. '엄마 찾아 삼만리'(김종래)의 금준은 노비로 팔려간 엄마를 찾아헤매며 겪는 갖가지 곡절로 코흘리개들 가슴을 짠하게 했다.

▶명랑활극 '땡이'(임창), 순정만화 '보리피리'(엄희자), 권투만화 '도전자'(박기정), 명랑만화 '짱구박사'(추동성)…. 떠올릴 때마다 얼굴엔 미소가, 가슴엔 온기가 솟는 추억 속 분신들이다. 만화방은 누추했다. 사방 벽에 고무줄이나 철사를 질러 만화책을 다닥다닥 붙이듯 세워놓았다. 긴 나무의자는 엉덩이 붙이기도 힘들게 좁고 딱딱했다. 그래도 아이들에겐 거기가 천국이었다. 60년대 한창때 만화방은 2만곳이 넘었다.

▶세대마다 어린 시절의 상징으로 간직한 만화 캐릭터들을 꼽아보면 그 자체가 한국 현대 만화사(史)다. 60~70대라면 1950년대 청소년 잡지 '학원'에 연재되던 '코주부 삼국지'(김용환)의 코주부 아저씨부터 떠오를 것이다. 40대에겐 길창덕의 '꺼벙이'와 이상무의 독고탁이, 30대에겐 이진주의 하니와 이현세의 까치가 있다. 60년대 '짱구박사'를 그렸던 추동성, 곧 고우영은 70년대 '수호지'의 무대(武大)로 어른 세대까지 사로잡았다.

▶만화계는 한국 만화의 출발점을 1909년 6월 2일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시사만화로 잡는다. 화가 이도영이 일제의 침략 야욕을 꾸짖었던 계몽·풍자 만화다. 이후 40년대까지 만화의 맥은 신문이 이끌었다. 화단의 대가 노수현이 20년대 조선일보에 연재한 '멍텅구리'는 최고 인기를 누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만화는 50년대 책과 잡지로 대중을 만나기 시작했고 60년대에 꽃을 피웠다.

▶80년대 말 일본 만화 개방으로 침체에 빠졌던 만화는 인터넷을 무대로 삼는 '웹툰'(Web-cartoon)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지식과 정보와 재미를 아우른 '식객'(허영만), '먼 나라 이웃 나라'(이원복)처럼 서점에서 팔리는 소장용 만화들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오늘 한국 만화가 100년을 맞았다. 한때 천대받고 무시당했던 역사를 뒤로하고 국가경쟁력에 긴요한 콘텐츠산업의 총아가 돼 새로운 100년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