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이 '수영연맹의 파벌'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에는 코치님들이 많이 없다. 게다가 싸우는 파들이 있다"고 했다.

28일(한국시각) 200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200m 결선 진출에 실패한 후 국내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전담 코치가 없이 훈련하는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많지 않은 수영지도자들이 친 연맹파와 반대파 등으로 나뉘어 전담코치를 선임하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태환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성공 이후 지도자를 수 차례 바꿨다. 노민상→박석기→유운겸→노민상으로 이어졌다. 아시안게임 이후 스피도 전담팀에서 반 연맹파인 박석기 전 대표팀 감독과 11개월 동안 손잡았다가 헤어졌고, 다시 색깔이 불분명한 유운겸 전 대표팀 감독을 전담팀 코치로 영입, 4개월 정도 함께 하다 갈라섰다. 이후 박태환은 다시 노민상 감독 밑에서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냈지만 수영계의 갈등은 더욱 깊어져갔다.

▶대표선발전이 없는 세계선수권, 지도자에 따라 바뀌는 대표선수

한국 수영 지도자들은 얼마 되지 않는 등록 선수(약 3000명)를 지도해 생활한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대한수영연맹의 수뇌부와 좋은 관계는 필수다. 대표팀 코칭스태프에 뽑히지 않는 지도자들은 각자의 클럽에서 선수를 지도한다.

그런데 박태환처럼 대부분의 대표선수들은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클럽 지도자들 사이에서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베이징올림픽 때 여자 대표로 나간 정슬기 최혜라 등은 '대표에 뽑히지 않아도 좋다'는 자퇴서를 내고 태릉선수촌을 나갔다.

대한수영연맹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 달리 세계선수권에서는 선발전 없이 대표선수를 정한다. 이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성적과 무관하게 발전 가능성이라는 명분으로 대표팀 지도자들의 입맛에 맞는 선수가 태극마크를 다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 대부분의 국가대항전에 나갈 대표 선발전을 반드시 치르게 돼 있다. 그래야 공정하다는 것이다. 또 클럽 지도자가 자신이 지도하는 선수가 대표로 선발되면 함께 대회에 참가하고 국가대표 지도자와 의견을 주고 받는다. 한국 수영에선 상상도 못할 합리적인 시스템이다.

▶친연맹파와 반연맹파, 그리고 중도파로 갈린 파벌

노민상 감독은 현재 수영연맹과 사이가 좋은 지도자다. 현 수영연맹의 회장은 대전지역 건설사를 운영해오다 부도를 맞은 심홍택씨다. 지금은 거의 연맹 일에 관여하지 못하고 정일청 전무이사가 총괄 지휘하고 있다. 노 감독은 정 전무이사와 친한 사이다. 이렇다할 선수 이력이 없는 노 감독은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박태환이 일약 스타로 떠오르자 한국을 대표하는 지도자가 됐다. 노 감독은 지난해 10월 SK텔레콤 전담팀 코치설이 돌았다. 그는 대표팀 감독과 박태환 전담팀 코치, 서울시청 감독 등 여러 자리를 동시에 하려다 SK텔레콤 측의 반감을 샀다.

반면 스피도 전담팀 1기에서 코치를 맡았던 박석기 전 대표팀 감독은 반연맹파다. 2007년 노민상 감독을 폭행해 파문을 일으킨 김봉조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가깝다. 도하 아시안게임 이후 박태환이 노민상 감독에게 결별을 선언하자, 노 감독은 "제3자가 개입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제3자로 지목한 것이 바로 김봉조 전 감독이다. 그는 현 수영연맹이 들어서기 전 '연맹의 실세'였다.

2007년 6월 박석기 전 대표팀 감독은 전직 대표팀 감독들과 함께 현 집행부의 퇴진을 요구했다.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박태환의 자유형 400m 금메달을 일궈낸 박석기 감독은 전담팀과 처우 문제를 놓고 충돌하다 박태환과 끝내 결별했다. 중도파인 유운겸 감독이 잠시 동안 박태환과 호흡을 맞췄지만 이렇다할 뭔가를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박태환은 여러 파벌의 지도자와 차례로 손을 잡았다가 현 대표팀 사령탑인 노 감독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박태환이 언급한 파벌의 실체다.

▶결국 선수가 피해 본다

한때 박태환을 지도했던 한 수영지도자는 "워낙 특출난 박태환을 지도하는 것은 국내 수영계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박태환을 두고 그동안 주위에서 수많은 해프닝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서 박태환을 통제할 지도자는 하나도 없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그는 "사실 박태환의 재능은 걸출하다. 집중적으로 관리만 하면 충분히 금메달을 딸 수 있다. 박석기 감독이 2007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우승을 시킨 것이나, 노민상 감독이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게 만든 것도 사실 박태환의 재능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집중적인 훈련이 부족했던 게 맞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박태환의 관리를 전담팀과 대표팀에서 이원화해서 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다른 수영 관계자는 "한 지도자를 배신하고 다른 곳으로 간 선수는 철저하게 보복을 당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수영은 클럽 시스템이 돼 있어 지도자들 사이에 서로 자기의 선수를 최고로 만들려는 경쟁이 치열하며, 특정 선수가 한 지도자를 배신하고 떠나면 그 지도자는 보복을 위해 대항마를 키워 그 선수를 꺾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날이 선 경쟁 구도에서 선수들은 깊은 상처를 입는다. 그 과정에서 국내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인간적으로 실망하게 된다. 결국 정말 재능이 있는 선수도 한국수영의 기형적인 구조에선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박태환도 그 피해자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