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궁중 스토리 → 90년대 전문 직업 → 2000년대 퓨전극
60년대 초기 정사보다 야사 극화 주류…정치→생활사극 이동
조선 벗어나 고조선까지 시대 확장 …'블록버스터'도 일반화

국내 TV사극의 역사는 깊다. 1962년 방송된 김재형 PD의 '국토만리'(KBS)가 최초의 사극이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를 드라마화했다. 이어 '마의 태자', '민며느리' 등이 제작됐다. 이들 사극은 고전설화를 중심으로 시청자의 민족 정서에 호소하는 이야기를 주로 다룬 게 특징이다. 이후 사극은 시대 흐름에 맞게 내용과 형식 면에서 큰 폭의 변화를 겪었다. 우선 권력투쟁을 다룬 정치 사극에서 생활 사극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고, 주인공도 왕을 중심으로 한 권력자에서 각 분야 전문가나 서민으로 바뀌었다. 시대별로는 조선시대에서 고려, 삼국시대를 거쳐 고조선까지 확장됐다. 2000년대 들어 수백 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블록버스터 사극'이 일반화됐고, 퓨전사극이 등장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1960~70년대 사극은 정사보다 야사를 극화한 게 주류였다. 일일극, 주간극, 단막극 등 다양한 형태로 방송됐다.

사극은 8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KBS 대하사극과 MBC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가 양대산맥을 이뤘다. 이들 사극 시리즈는 왕을 중심으로 궁중의 권력투쟁을 전면에 내세운 정치 사극, 궁중 사극이었다. KBS 대하사극은 단종과 세조의 왕위찬탈을 그린 80년 '파천무'로 시작됐다. 주말 시간대 고정 편성돼 30년을 이어오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한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는 83년 '추동궁 마마'부터 '대원군'까지 10년간 방송됐다. 신봉승 작가, 이병훈 PD가 야사보다 정사, 왕을 포함한 역사 속의 주요 인물들을 다뤘다.

90년대 들어 사극은 다양화됐다. 무엇보다 인물이 바뀌었다. 왕과 신하, 왕비와 후궁이 암투를 벌이는 전개에서 탈피해 한의사, 상인 등 전문가 집단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91년 방송된 '동의보감'이 새 흐름을 이끌었다. '동의보감'은 조선시대 명의 허 준의 일대기를 그린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허 준은 99년 말 또 한번 사극의 주인공이 됐다. 이병훈 PD, 최완규 작가가 극본을 맡은 '허준'은 시청률이 60%까지 오르는 등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사극의 주인공으로 조선시대 여자 형사인 다모('다모'), 내시('왕과 나'), 상인('상도'), 궁녀('대장금'), 기생('황진이') 등 전문 직업인이 대거 등장했다. 궁예와 견훤('태조 왕건'), 장보고('해신'), 신돈과 공민왕('신돈') 등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을 재평가한 사극도 많이 제작됐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퓨전사극이 새 흐름을 형성했다. 현대 드라마와 사극의 특징을 접목, 젊은층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퓨전사극 시대를 연 작품으로는 '다모'(03)가 꼽힌다. 방학기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다모'는 영화 같은 화려한 영상과 빠른 전개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다모폐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조선시대 수라간 궁녀 장금이의 삶과 사랑을 그린 '대장금'(03)도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오를만큼 빅히트했다. '대장금'은 한류 드라마 대표작으로 자리잡았고, 이영애는 이 드라마 덕분에 한류스타로 떠올랐다. 드라마 인기를 바탕으로 뮤지컬로 제작되기도 했다.

2000년부터 3년간 방송된 '태조 왕건'은 블록버스터 사극 시대를 열었다. 대규모 전투신, 스펙터클한 화면이 호평받았다. 이후 '불멸의 이순신', '대조영', '주몽' 등 전쟁사극 붐이 이어졌다. 이 대형 사극들은 30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갔고, 지방자치단체마다 촬영장을 제공하는 유행을 낳기도 했다. 한류스타 배용준을 내세운 '태왕사신기'(07)는 환상적이고 독특한 형식미로 주목받았다.

여성의 역할과 비중이 꾸준히 커진 것도 주목을 끈다. 사극의 주인공은 남성 혹은 영웅 일변도였고, 여성이 등장한다고 해도 '장희빈'이나 '여인천하'처럼 권력에 눈먼 후궁이 고작이었다. '다모', '대장금', '해신'을 거치면서 여성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캐릭터로 변했고 '천추태후', '선덕여왕'에서는 아예 여성이 중심인물로 극을 이끌어가고 있다.

왕의 성격이 달라진 점도 눈에 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아니라 '대왕 세종, '이산'과 같이 제왕의 리더십,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사극이 인기를 끌었다.

역대 사극의 주인공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은 장희빈이다. 지금까지 드라마로 5번 제작됐는데, 장희빈의 극적인 삶이 드라마 소재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질투의 화신이었던 장희빈이 2002년 김혜수가 연기한 '장희빈'에서는 신분상승을 꿈꾸는 진취적인 여성으로 그려진 점도 눈길을 끈다.

'허준'
'용의 눈물'
'태조 왕건'
'대장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