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부터 각종 일간지 중심으로 '나영이 사건'을 '조두순 사건'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네티즌들은 이미 지난달 30일부터 앞다퉈 '조두순'이란 이름을 온라인상에 공개했고, 이젠 '공공의 적'과 같은 존재가 되버렸다.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도 5일서울 계동 복지부 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조두순 사건'과 관련, "8일 관계부처와 함께 법정부적인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내년부터 성범죄자의 인터넷 실명공개가 이뤄진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동명이인’을 가진 사람들은 괴롭기만 하다. 자신은 결코 범인이 아님에도, 자꾸 이름이 세간에 오르락 내린다. 자기 이름에 대한 자부심이 한번에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수십 년간 믿음과 신뢰로 함께했던 가족들도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동명이인’인 일반 시민 ‘조두순’씨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6일 오전 5시 15분 서울 강동구 성내동의 한 아파트. 안방에서 조두순(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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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업)씨가 침대에서 눈을 떴다. 5일 한 일간지에서 그의 이름이 거론되면서부터 그는 아내보다 10~15분 일찍 눈을 뜬다. 부랴부랴 이빨을 닦고는 신문을 들고 화장실 용변기에 앉았다. 1면부터 3면까지 모두 ‘조두순’이라는 이름으로 도배된 한 일간지였다. 아직 졸음으로 가득찬 두 눈이 퍼뜩 떠졌다. 조씨는 바로 신문지를 화장실 바닥에 내팽겨쳤다. “마음이 언짢았죠. 또 ‘내 이름이다’였어요. 아침부터 화가 났습니다.”

조씨는 20년 전부터 새벽 5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10분 거리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조씨는 “성당에서 성경책을 읽으면서 잠시 잊어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미사는 그의 근심을 덜어버리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조씨는 마포 공덕동까지 1시간 동안 지하철로 출근했다. 지하철 내부가 출근하는 직장인으로 꽉 찼다. 각종 원색적인 무가지를 들고 읽는 직장인들이 눈에 띄었다. “‘나영이 사건’은 ‘조두순 사건’으로” “조두순, 화학적 거세?”등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사람들 사이에서 움직일 틈 조차 없는 조씨는 천장을 먼 허공인양 쳐다봤다.

조씨는 20여명 되는 원단 수출업체의 전무다. 여성 직원들은 대부분 ‘워킹맘’이다. 오전 11시, 자신을 앞에 두고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영이 사건 범인 있잖아. 정말 나쁜 놈이에요.” “그러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상사의 이름과 동명이인이라는 사실에 ‘조두순’이라는 이름은 언급하지 않은 눈치였다. 조씨는 “3일전부터 동료들의 눈빛이 조금 다르다”며 “이전보다 말을 아끼고, 자꾸 내 눈치를 보고 있다”고 했다.

조씨는 해외영업을 담당한다. 그래서 해외 클라이언트와 만나거나 통화할 때면 ‘미스터 조’(Mister Jo)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러나 2~3개의 성당신도모임, 동창회, 사무실 미팅이 있을 때면 명함을 주고 받는다. 한 모임에서만 수십장씩, 사무실에선 1주일에 4~5번씩 명함을 건넨다.

그는 “다행히 명함엔 ‘조두순’이라고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한자와 영어로 돼 있어 불안하다”며 “혹시 ‘당신이 그 사람?’이라과 말하면 참 난감할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오후 7시쯤, 일을 마친 조씨가 퇴근을 2시간 늦췄다. 그는 “괜히 일찍 들어가면 가족들의 시선이 부담될 것 같았다”고 했다. 남는 시간 성경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오후 9시 30분쯤 집에 도착했지만 침묵이 흘렀다. 아내와 큰 딸(30), 차녀(27), 그리고 아들(15)이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모두 말을 아끼는 표정이었다. 조씨는 “평소에 ‘아들 뭐해?’ ‘이야기하자’며 같이 대화도 많이 했지만, 이날은 그냥 혼자 드라마를 시청했다”고 했다.

사실 전날(5일) 새벽 조씨의 큰 딸이 먼저 일어났다. 딸은 안방으로 허겁지겁 달려가 조씨를 흔들어 깨웠다. “아빠 일어나보세요. 이거 봐요. 충격이다, 충격.”

조씨의 이름 ‘조두순’이 버젓이 신문 1면에 쓰여 있었다. 딸은 내년 초 결혼을 앞둬 혼수 준비 등으로 예민한 상태였다. 그런 딸은 “아빠가 괜한 오해를 받으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다.

“매우 당황스러웠어요. 조선시대 훌륭한 벼슬가의 이름이 ‘조두순’입니다. 그런 자부심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조씨는 “딸이 결혼을 앞두고 괜히 시부모님으로부터 한 소리 들으면 어떨지 고민되요.”

조씨의 아내는 “이름 나온 것에 대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힘내라”고 했다. 조씨는 사실 20년 전부터 인근 성당의 봉사모임에서 매달 2~3번씩 독거노인을 찾아가 발도 씻겨주고 청소도 해주는 등 나누는 삶을 살았다. 또 20년 넘게 무역업 쪽에 종사하면서 싫은 소리 한번 들어본 적 없는 이 시대의 평범한 샐러리맨이자 ‘가장’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주에 만날 친한 봉사단원들이 ‘네 이름 신문에 떴다!’라고 할 텐데 뭐라고 대답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앞으로 흉악범이나 아동 범죄가 거론될 때마다 ‘조두순’ 석자가 계속 나올 텐데..어떻게 하죠? 한글 실명이 아닌 범인의 이름을 한문으로라도 적어 줬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조씨는 “20년 동안 쌓아온 삶이 무너진 느낌이다. 언제 내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갈지 모를 판이다. 피해자가 된 기분이다. 나의 이름은 ‘조두순 사건’의 조두순이 아닌 일반시민 조두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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