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설치작가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이 2003년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서 선보였던 《날씨 프로젝트》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가 연출했던 장면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테이트 모던의 넓은 터빈홀에 설치한 인공 태양의 장관이 관람객을 압도했다. 잡을 수도 없고 쳐다볼 수도 없는 태양을 현대미술관에 들여놓은 대담함과 기발함, 시각적 아름다움이 그의 명성을 높여주었다. 엘리아슨은 뉴욕 이스트강에 초대형 인공 폭포를 만드는 등 '유사 자연'을 연출하는 현대미술의 연금술사 같은 존재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엘리아슨의 개인전 《하늘은 풍경의 일부일까(Is the sky part of a landscape)》전(展)은 테이트 모던만한 장관은 연출해내지 못하지만 작가의 작품을 요약적으로 특징 있게 보여준다. 이번 한국 전시에서도 엘리아슨은 프리즘의 굴절과 물의 반사 작용을 이용해 고위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오로라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낸다. 〈보색 색상 차트〉는 인공 안개가 부옇게 낀 방에 빨강과 초록이라는 색이 어떻게 분해될 수 있는지 몸으로 체험하게 한다. 빛과 안개가 어우러져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낸다.

덴마크 출신의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색채 실험〉. 가시광선의 스펙트럼을 표현했다.

베를린에 마련한 그의 스튜디오에는 30명에 이르는 과학자와 건축가·기술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며 작품을 연구하고 만든다. 이들은 엘리아슨의 지시에 따르는 조수들이 아니라 같이 협업하는 '예술연구원'들이다. 정교한 계산과 실험에 의해 탄생한 엘리아슨의 작품들은 자연과학이 주는 정교함을 이용해 예술의 황홀경을 넘본다.

엘리아슨이 자연을 분석할 수 있는 실험대상으로 본다면,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네덜란드 작가 프레 일겐(Fr�[ Ilgen)의 작품은 자연을 불가지론의 입장에서 접근한다. 《고요하고도 자유로운 비상(Soaring Calm and Free)》이라는 제목의 전시에서 일겐의 설치작품은 그가 20년 가까이 탐구해온 동양사상을 보여준다. 일본 서체(書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등 기교나 의도가 배제된 것 같은 자유스러움 속에서 동양사상을 표현한다. 일겐은 "서양은 논리를 앞세우고 논쟁을 요구하지만 동양은 다르다"며 "기(氣)와 우주의 조화 같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 중인 작품〈마법사〉앞에 선 네덜란드 작가 프레 일겐.

스테인리스 스틸을 작업해 만든 작품들은 살아 있는 색과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선이 대조를 이룬다. 아무렇게나 구부러진 선 속에서도 인간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 작품에서 탄탄한 균형과 함께 음악적 선율이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칸딘스키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겐은 작년 서울 흥국생명 사옥에 설치된 대형 설치작품 〈당신의 긴 여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엘리아슨의 전시는 11월 30일까지(02-515-9496), 일겐의 전시는 11월 8일까지(02-720-1524)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