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서울대를 졸업한 만 27세의 여성 역사학도가 홀로 프랑스로 떠났다. 그는 소르본대학에서 역사학 석·박사 학위를 딴 뒤 벨기에로 갔다. 종교학 공부를 위해서였다.
역사학 박사를 딴 사람이 새삼스레 종교학 공부를 학부부터 시작한 것은 불교, 무속 신앙 등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깊어서였다. 종교학 공부를 마친 뒤 최종 목표로 설정한 것은 '프랑스국립도서관 취직'이었다. 그는 왜 그토록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들어가고 싶어 했을까?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에 상륙해 외규장각 장서를 약탈해갔어요. 그중 일부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있다는 풍문을 듣고 '내가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재불(在佛) 서지학자 박병선(81)씨는 말끔한 은발에 또렷한 눈매로 "나는 꿈을 이뤘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고등교육원에서 종교학 박사를 딴 뒤 1967년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가 됐고, 3000만종이 넘는 장서를 뒤져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도서 298권을 찾아냈다.
그는 프랑스 상사(上司)들에게 밉보여 1980년 도서관을 그만뒀다. 그는 개의치 않고 자기 길을 갔다. '프랑스 공무원'이 아닌 '개인 박병선' 자격으로 자신이 박차고 나온 바로 그 도서관에 찾아가 한달간 끈질기게 외규장각 도서 열람을 청했다. 허가가 떨어진 뒤엔 10여년간 매일 도서관에 가서 외규장각 도서의 목차를 베끼고 내용을 요약했다.
그는 줄곧 파리 교외에 혼자 살았다. 천장까지 사료(史料)가 쌓인 아파트(59.5㎡·18평)에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기도를 했다. 오전 9시에 집을 나와 1시간 30분간 전차와 지하철을 타고 도서관으로 갔다. 보다 못한 한국대사관에서 2005년 조그만 사무실을 내줬다.
박씨는 지난 9월 사료를 찾으러 귀국했다 직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그는 동정(同情)을 질색했다. "직지심체요절을 찾은 것도, 외규장각 도서를 찾은 것도 모두 내가 좋아서 한 일"이라고 했다.
병원 복도를 서성거리던 지인이 수심 어린 낯을 했다. "프랑스 공무원 연금으로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해 오셨어요. 자존심이 강한 분인데 입원비, 치료비 대책이 없어 큰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