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에 사는 임연화(51·여)씨는 지난해 어렵게 장만한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큰 마음 먹고 삼성전자 TV와 냉장고, 세탁기를 구입했다. 임씨는 구입한 지 1년도 안된 TV가 고장이 나자 바로 해당 업체 수리기사를 불렀다.
그런데 고장난 TV를 찬찬히 살펴보던 기사는 뜻밖의 말을 건넸다. 이 제품은 2년이 지나서 무상 AS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제품을 사기 전에 이미 오랫동안 사용한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임씨가 산 TV는 알고 보니 매장에서 1년간 진열됐던 이른바 ‘DP’ (Display) 전시상품이었다.
화가 난 임씨는 가전제품을 산 매장에 환불을 요구했다. 하지만 제조사에서 직영하는 판매업체 답변은 더욱 황당했다. 업체 측은 전시상품이라는 것을 미리 공지했다고 주장했다. 1년간 사용했으니 감가상각을 뺀 나머지만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임 씨는 “제품에 전시상품이라는 표시도 없었고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다”며 억울해 했다. 실제 이 매장에서는 전시상품을 전산상에 따로 관리하거나 하지 않고 있어 당시 판매 상황은 확인이 불가능했다.
임씨는 전시상품인 줄 모르고 산 것도 화가 나는데, 1년간 쓴 비용을 물어내라니 울화통이 치밀었다. 임씨는 설명도 제대로 안 해 주고 판매했다는 점은 사과하지 않고 버티는 판매업체와 2달간 입씨름하다 지쳐버렸다. 결국 처음 구입했던 TV가격인 198만원에서 40만원이 더 싼 158만원짜리 TV로 교환하기로 했다.
이처럼 전시상품이 신제품으로 둔갑해 판매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에 대한 피해를 보상받기란 쉽지 않다. 소비자가 전시상품인 줄 모르고 가전제품을 사게 되는 피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전국 전자제품 판매업체는 직영 대리점을 포함해 모두 1800여개. 판매 매장마다 진열되는 상품이 20~40여대임을 감안하면 진열대에 전시된 DP 상품은 대략 4만대에서 7만대로 추산된다. 냉장고와 세탁기 등 백색가전 제품을 모두 포함하면 진열상품은 약 10만대에 달한다.
전시상품 숫자는 생산제품 가운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매장에서는 진열상품의 판매표시를 찾아 보기 힘들다. 일부 대형 유통 매장의 경우 진열상품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할인된 가격에 팔고 있다.
하이마트의 한 지역 판매자는 "제조사에서 단종된 상품을 네트워크에 올리면 상품에 진열표시를 하고 할인 판매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제조사에서 제품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을 경우에만 할인 판매한다는 것이다. 한 매장 직원은 "진열상품은 찾기 힘들어요. 한 달에 한 건 나오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매장마다 전시된 상품들은 실제 어디로 팔려나가는 것일까? 대형 가전유통업체 관계자는 "DP상품들을 일일이 데이터베이스에 넣어 세세하게 관리하기는 무리"라고 말했다.
규모가 작은 소형 점포의 경우 진열된 제품을 구별해서 사기는 더 힘들다. 제품에서 진열 표시를 찾기 어렵다. 아예 제품 포장비닐이 벗겨지지 않은 상품도 그대로 진열돼 있었다. 한 매장 직원이 전시상품의 유통 비밀을 털어놓았다.
"진열 상품은 제조사에서 보조금을 지급해 주는 기간이 있어요. 그 때 싼 가격에 내놓거나 아니면 그냥 파는 거죠. 우리도 남아야 하니까."
소비자시민모임 김자혜 사무총장은 "해당 업체가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진열상품 정보를 전산망에 올려놓아 투명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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