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마디, 마디가 쑤신다. 격렬하게 몸을 쓰다가 보니 잔부상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우울한 순간은 아파서 무대에 서지 못할 때. 살아 숨쉬는 한 언제까지라도 무대에서 춤추고 싶은 젊은이들, 지난 10월 세계 최대의 비보이(B-Boy) 배틀(Battle)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의 비보이팀 갬블러 크루(Gambler Crew)다.

◆ 매일 10시간의 강훈련으로 다진 실력

비보이는 힙합댄스 가운데에서도 특히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춤꾼을 일컫는다. 힙합과 비보이 문화가 서양에서 시작된 만큼 우리의 비보이는 그 역사도 짧고 사회적 인식이나 환경도 열악하다. 그럼에도 고난도의 동작을 거침없이 구사하는 한국의 비보이들은 각종 세계대회를 석권하며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방대한 연습량 덕분이다.

"외국에서는 비보잉(B-boying)이 오래된 문화여서 자연스럽게 즐기는데 우리는 강한 의욕과 승부욕으로 새로운 기술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게 큰 차이점이죠. 외국 친구들이 하루에 한두 시간 연습할 때 저희는 매일 10시간씩 쉬지 않고 연습했어요. 문화에서 오는 격차를 연습량으로 채운 셈이죠."

올해 우승은 이들에게 더욱 큰 의미가 있다. 2009년은 세계적 배틀인 BOTY(Battle of the year)의 20주년이었고, '갬블러 크루'가 2004년에 이어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것이기 때문이다.

◆ 밤새우며 연습하는 모습에 부모들도 마음 돌려

일부 어른들은 비보이들을 '노는 아이들'로 오해하지만,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 춤에 대한 순수와 열정으로 가득찬 영혼들이다. 특히 20대 중반의 멤버들은 학창시절 부모의 걱정과 반대를 노력과 열정으로 넘어섰다.

신규상씨는 "실력을 더 갖추고 싶어서 자정부터 5시까지 지하철이 끊긴 역에서 혼자 춤을 췄다"며 "밤마다 집을 나서니까 어느날 아버지께서 저를 미행하셨나 봐요. 음악을 틀어놓고 연습 중인데 간식 꾸러미를 내려놓으시더라구요"라고 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신씨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열심히 하니 반대 못 하겠다. 열심히 해 보라"고 격려해줬다고 한다.

'커서 뭐가 되겠느냐'는 부모님 걱정에 "아르바이트 하면서 춤만 출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박지훈씨도 지하철역과 학교 복도가 연습 장소였다. 주말에는 구마다 있는 청소년 수련관을 옮겨 다녔다. 박씨는 "9시 TV뉴스에 나오니까 보수적인 분들도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봐 주더라"며 "그 덕에 비보이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바뀐 것 갔다"고 말했다.

강한 힘을 가하면 액체와 고체의 성격을 동시에 띄는 점탄성 원리를 이용해 비보이‘갬블러크루’가 전분용액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 좋아서 즐기다가 보면 다른 것들도 따라와

활동 초창기 이들은 출연비 대신 식권을 받기도 했고, 몇 달 동안 라면만 먹으면서 얼마 안 되는 출연비를 모아 국제대회 출전 비용으을 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독립된 회사로 출범했고, 양재동 연습실은 사업장이 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비보잉 강습과 연습생 개념의 후배들을 키우는 일까지 겸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춤이 좋아서 즐긴 것 뿐인데 하다 보니 공연해서 돈도 벌고, 인기도 얻고, 연습실도 생겼다”는 신규상씨는 “이 모든 게 열심히 하다가 보니 따라온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신씨는 “애초에 이런 걸 바라고 시작한 게 아니다”며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갬블러 크루’의 향후 계획에 대해 박지훈씨는 “배틀이라는 것 자체가 춤으로 승부를 가리는 것”이라며 “우리팀의 이름을 걸고, 우리나라의 명예를 걸고 ‘한판 붙는’ 거니까 한국인 특유의 긍지와 의지로 열심히 밀어붙여야죠”라고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톱클래스’ 12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