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오 베를루스코니(Berlusconi) 현 총리

이탈리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정권이 62번 바뀐 나라다. 1년마다 한번씩 정권이 바뀐 셈이다. 이런 나라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Berlusconi) 현 총리는 세 차례 집권했고, 재직기간을 다 합치면 8년이 넘는다. 최장기록이다.

숱한 여성 편력과 각종 부패 혐의로 지탄을 받으면서도 그가 건재한 까닭은 뭘까. 미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30일자)는 그의 권력 유지 비결로 '벨리나(velina)'를 꼽았다.

벨리나는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방송에 양념처럼 등장하는 '미모의 젊은 여성'을 뜻한다. 진지한 프로그램에선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고, 쇼 프로그램에선 야한 복장을 하고 춤을 추거나 각종 게임을 한다. 성인 채널에선 옷을 벗어 던진다. 선정성과 여성의 상품화 논란에도 불구하고 워낙 광범위한 인기를 누려 이탈리아에서 벨리나는 파스타와 같은 존재라고 타임은 설명했다.

이탈리아의 기회균등 담당 장관 마라 카르파냐의 벨리나 시절.

벨리나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언론 재벌인 베를루스코니의 발명품이다. 이탈리아 언론이 종교·사상적 엄숙주의에 물들었던 1980년대 후반 풍자 뉴스라는 신개념의 프로그램을 통해 벨리나를 히트시켰다. 원래 야한 옷을 입고 남성 진행자에게 뉴스가 인쇄된 종이를 전해주는 단순한 역할이었지만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성원 속에 활동 무대를 넓혀 지금은 거의 모든 방송사가 벨리나를 뽑아 각종 프로그램에 활용한다.

이젠 젊은 여성들이 선망 직업 1순위로 벨리나를 꼽는 세상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이런 벨리나에게 정계 진출의 문까지 열어줬다. 작년 기회균등 담당 장관에 앉힌 마라 카르파냐(Carfagna)가 대표적이다. 미스 이탈리아 선발대회에서 6위에 입상한 뒤 벨리나로 활약한 그녀는 지난 7월 G8(주요 8개국) 정상회의 때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임시 퍼스트레이디로도 활약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 때 벨리나 출신 여성 4명을 여당 후보로 출마시키기도 했다. 베를루스코니는 현재 국내 TV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그가 "유권자를 '만들어내는' 세계 유일의 정치인"이란 소리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 사회화'의 문제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