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강입자 가속기가 양성자 가속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는 소식을 접한 미국 과학계는 현재 흥분과 안타까움에 휩싸여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0일 보도했다. 안타까움은 입자 물리학의 주도권을 유럽에 빼앗겼다는 차원에서다.
CERN의 강입자 가속기가 완성되기 전까지 세계 최대의 입자 가속기는 미국 일리노이주 페르미연구소의 '테바트론'이었다.
입자 물리학은 가속한 양성자 등 입자를 충돌시켜 그 반응을 관찰하는 실험에서 대부분의 연구 성과가 나온다. 충돌의 속도가 빠르고 에너지가 클수록 더 새로운 현상이 관찰된다. 그동안은 미국이 이 분야의 연구를 주도해왔다.
그러나 CERN 가속기의 등장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Weinberg) 미 텍사스대 교수는 "앞으로 수십년 동안 입자 물리학 분야의 가장 관심 있는 새 연구 결과들은 미국에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이미 1993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미국 물리학자들은 CERN의 강입자 가속기보다 2배 이상 큰 '수퍼 가속기'를 텍사스주에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미 의회는 110억달러(약 12조8000억원)의 막대한 건설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계획을 취소했다.
입자 가속기와 관련된 첨단 기술도 유럽이 주도할 가능성이 커졌다. 가속기의 초전도 자석과 센서 기술은 의료분야에 응용돼 MRI(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와 PET스캐너(양전자단층촬영장치)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유럽이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기에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CERN 가속기는 현대 물리학에서 입자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표준 모형(Standard Model)' 이론의 범위를 넘어서는 고(高)에너지의 충돌 실험을 위해 설계됐다. 그러나 기계적 결함 등으로 아직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를 보완하는 데 1년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그동안 미국의 테바트론이 입자 충돌 실험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입력 2009.12.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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