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리노이강 생태학연구소가 공개한 아시아 잉어의 한 종류인 백련어. 길이 1.2m, 몸무게 45㎏의 백련어들이 물고기를 먹지 않고 플랑크톤을 먹어치우고 있어 생태계 파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문화일보 12월 11일자 보도)
쪽배를 타고 강을 유유히 건너거나 수상스키로 물살을 가로지를 때 어린아이만한 물고기들이 여기저기서 튀어오른다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일 법하지만 북미에선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실제 상황이다.
놀라면 물 위로 최대 3m 높이까지 솟구치는 백련어(白�魚) 습성 때문에 배가 망가지거나 사람이 다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미국 지질조사소(USGS)는 "빠르게 굴러가는 볼링 공에 얻어맞는 것과 비교된다"고 한다.
백련어는 머리가 커 '실버 빅헤드(silver bighead)'로도 불린다. 중국이 원산지인 백련어가 어떻게 미국까지 건너갔을까. 태평양을 헤엄쳐 그곳까지 이른 것은 아니다. 이른바 '용병(傭兵)'으로 수입된 것이다.
백련어는 잉어목 황어아과의 '민물고기'다. 영문명(silver carp)도 은빛잉어라는 뜻이다. 1970년대 미국 남부의 메기 양식장에서 플랑크톤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 백련어가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계기다.
백련어는 주로 식물성·동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살지만 수생곤충·갑각류·지렁이 등도 잡아먹는다. 문제는 양식장에서 키우던 백련어가 호우(豪雨) 때 미시시피 강으로 유입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40%에 달하는 플랑크톤을 먹어치우는 데다 한 번에 최대 200만개까지 알을 낳는 번식력이 화근이 됐다.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다른 물고기들이 백련어와의 경쟁에서 밀려 씨가 말랐다. 그러자 수생 생태계 균형은 순식간에 깨졌다. 미주리강에서 잡히는 물고기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했다는 것과 1년에 32㎞ 이상을 돌아다녔다는 조사결과가 나올 정도로 백련어는 강의 지류까지 평정하다시피 했다. 미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백련어가 미시시피강에서 오대호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전기 울타리를 치는 등 갖가지 방법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해법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블루길과 큰입배스 등 귀화어류들이 말썽을 부린 적이 있다. 그걸 토종어류 쏘가리로 제압했다. 그렇다면 우리처럼 천적(天敵)을 이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는 백련어는 덩치가 워낙 커 사실상 천적이 없다. 큰 것은 무게 50㎏ 이상에 길이가 1.4m 이상이다. 미국에선 "백련어를 무찌를 수 없다면 먹어치우는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워 먹으면 연어보다 더 맛있다"는 캠페인 문구를 내거는 식이다. 앞서 우리나라도 1963년에 백련어를 양식용으로 들여왔다. 먹을거리가 귀했던 시절 중국처럼 백련어가 식용으로 애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치어 2만마리를 낙동강에 방류한 것을 비롯, 이후 다른 강과 호수에도 백련어 수백만마리를 풀었다. 하지만 40여년이 지난 요즘은 종(種)만 겨우 유지할 정도로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백련어는 왜 한국에 정착하지 못했을까. 국립수산과학원 강언종 연구관은 "백련어는 암컷이 강 상류 쪽으로 올라와 산란하면 알이 하류로 떠내려가면서 부화하는데 우리나라 강은 짧아 자연번식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덩치 크고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백련어 특성상 풍부한 수량이 필수적인데 우리 환경은 그렇지 않다. 또 중국과 달리 우리는 식용으로도 즐기지 않아 백련어는 국내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