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간 호텔업계에 종사해온 프레지던트호텔 임승순 대표이사. 팔순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있다.

20대 태반이 백수(이태백)이고 45세가 정년(사오정)이라는 시대에 아직도 월급을 받고 일하는 백발의 팔순노인이 있다. 대형호텔에서는 그 노인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아직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틀 후면 80세가 되는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의 임승순 대표이사. 53년간 호텔리어로 활동한 국내 호텔업계의 대부이다.

1956년 국학대학교(훗날 고려대학교로 합병)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사법시험과 교원자격증을 뒤로하고 당시 3D업종으로 꼽히던 호텔 종업원의 길을 택했다. 경영직으로 채용됐지만 사람과 부대끼는 일을 좋아해 룸서비스를 자청했다.

호텔업계 최고 영예인 ‘영원한 호텔맨상’이나 국가훈장을 받을 때도 스스로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이라며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렸던 그를 27일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만났다.

◆ IMF때도 구조조정 없이 흑자 행진

“비결은 간단합니다. 이익을 내기 때문입니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경영자는 그 누구라도 물러나야 합니다. ”임 대표는 자신이 팔순까지 월급을 받는 비결로 주저 없이 ‘이윤 창출’을 꼽았다. 1974년 지배인의 자리에 오른 그는 35년간 멈출 줄 모르는 흑자행진을 이어왔다.

운영이 가장 어려웠을 때는 1997년 외환위기 시절. 투숙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고, 굴지의 호텔들도 수백 명씩 감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임 대표는 모든 직원들의 정년을 보장했다. 우선은 비용 절감에 주력했다. 쓰레기 분리수거와 부피 줄이기로 매달 쓰레기봉투 비용을 25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줄여 연간 1200만원을 절약했다. 제일 말단직원이 쓰는 전기, 가스, 물 사용량까지 세심하게 챙겼다.

공격적인 마케팅도 병행했다. 아무리 손님이 없다 해도 전기와 난로를 끌 수는 없는 법. 임 대표는 “경기가 어려운데 서민들도 의욕을 낼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자”는 생각으로 특급호텔에서 금기시되는 ‘박리다매’를 시도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커피숍 뷔페. 당시 가격 1만2000원에 28가지 음식과 맥주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결과는 대박. 임 대표는 “당시 손님들은 호텔 정문 밖까지 줄을 섰다”며 “결국 그해 목표를 초과달성해서 구조조정 없이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의 ‘박리다매’ 경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이 호텔 커피숍의 점심 뷔페 이용료는 1만 6500원. 임 대표는 “음식값 중 재료비가 26%를 넘으면 경영능력을 의심받는 게 세계 호텔업계의 상식인데 우리는 무려 70% 수준”이라며 “그래도 단골이 워낙 많아 신종플루 같은 악재에도 끄떡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 반세기동안 최고 꼴불견 손님은?

임 대표는 지난 반세기동안 자신이 목격한 최고의 꼴불견 손님으로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 벌어진 일부 군인들의 행패를 꼽았다.

그 무렵 딱딱한 프랑스빵이 처음 수입되기 시작해 특급호텔에서도 장성급의 귀빈에게만 제공됐다. 어느 장군 출신 정치인이 빵을 칼로 썰으려 했는데 표면이 딱딱해 뜻대로 되질 않았다. 그는 벼락같은 목소리로 지배인을 부르더니 모두가 보는 앞에서 따귀를 날렸다. “이 XX야, 날 뭐로 보고 오래된 빵을 가져온거야!”

얼마 후 호텔을 찾은 다른 군인들이 양식당에서 코스요리를 먹었다. 당시 5년차 종업원이었던 그는 “수프를 시골 머슴이 국마시듯 ‘후루룩’ 먹는데 외국인들이 계속 쳐다보더라”며 “가서 얘기할 수도 없고 참 난감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양식당에 손님 20명이 있었는데 모두가 수프를 다 먹어야 종업원은 그릇을 가져가고 다른 음식을 내올 수 있었다. 그런데 수프를 급하게 들이킨 군인들이 욕설과 함께 “빨리 그릇 안 빼냐”며 고함을 질러 어쩔 수 없이 그릇을 뺐다. 다른 테이블에서 수프를 천천히 먹고 있던 외국인 손님들은 “무례하다”고 항의하며 음식값도 지불하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그는 “당시 군인들은 호텔도 몰랐고 자신들의 수준도 몰랐다”며 “권세를 누릴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계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요새는 회갑잔치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초호화판 돌잔치가 벌어지는 세태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 “아내와 연애시절 찍은 사진이 내 수호신”

임승순 대표의 '수호신'인 연애시절 아내와 찍은 사진

임 대표는 지갑 속에 늘 비닐로 싼 흑백사진을 넣고 다닌다. 아내와 연애할 때 송도해수욕장에서 찍었던 사진이다. 그는 “한평생 곁에서 떠난 적이 없는 내 수호신”이라며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만 할 때 큰 힘이 됐다”고 자랑스럽게 펴보였다.

임 대표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로 주저없이 아내와 결혼한 일을 꼽는다.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날 역시 결혼기념일이다. 아직도 연애할 때처럼 엽서에 시를 써서 선물한다는 그는 “모든 것을 기댈 수 있는 동지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는 엄청나다”며 부부사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유의 낙천성과 웃음도 50여 년간 그를 지탱해준 힘이다. 그는 3000개의 유머를 외워 틈만 나면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그는 새로 익힌 유머가 사람들 앞에서 말할 만큼 재미있는지 매일 아내에게 검증을 받고 있다고 한다.

최근 출판된 그의 자전적 수필집에는 주민등록번호가 적혀있다. 주변 사람들이 “개인정보가 그토록 중요한 시대에 도용이라도 당하면 어쩌냐”고 걱정했지만 마냥 싱글벙글이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 걱정이 안 돼요. 그걸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살라고 하죠, 뭐. 요새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을 보면 표정을 활짝 핀 경우를 보기가 힘들어 안타까워요.”

1시간의 인터뷰를 마친 그가 호텔 밖까지 나와 허리 굽혀 인사를 건넸다. ‘영원한 호텔맨’의 백발 위로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한국 대표 CEO의 인생관을 엿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