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방화범 채종기씨.

"내가 바보였습니다. 정말 내가 바보였습니다."

지난 6일 오후 경남 마산시 회성동 마산교도소 면회실에서 만난 숭례문 방화범 채종기(72)씨는 기자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바보'란 말을 되풀이했다. 짧게 깎은 백발에 파란 수의(囚衣) 차림의 채씨는 면회객을 오랜만에 만났는지 반가운 표정으로 면회실에 나왔다. 그는 "가족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채씨는 2년 전 2008년 2월 10일 밤 국보 1호 숭례문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토지보상 문제에 불만을 갖고 있던 그는 숭례문 2층 누각에 올라가 준비한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600여년 버텨온 남대문은 전소(全燒)됐다. 같은 해 10월 징역 10년형이 확정돼 마산교도소에 복역 중인 채씨는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채씨는 2년 전 사건에 대해 묻자, "내가 그때 바보짓을 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일은 누가 시키더라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국민이 좋아하는 국보를…. 국민들에게 마음으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불을 낸 지 5일 만에 현장검증 자리에서 "그래도 인명피해는 없었잖아.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고 말해 또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냈었다. 채씨는 이에 대해 "당시 화가 나서 내뱉은 말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채씨는 "출소하면 복원된 남대문(숭례문)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듯 "사람들로부터 뻔뻔하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아 조심스럽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교도소 안에서 내가 숭례문 방화로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된 다른 죄수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눈을 감았다.

채씨는 불을 지른 이유였던 토지보상금 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불만이 많았다. 경찰조사에서 "2002년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있는 토지가 재개발되는 과정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해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던 채씨는 15분 면회 동안 계속 이 이야기를 꺼냈다.

채씨는 "감옥에 들어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남대문 방화범 채종기입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3개월 뒤에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했다. 그는 면회가 끝난 뒤에도 먼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할 말을 다하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기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제야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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