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기관장' 사태를 겪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는 8일 서울 대학로 예술위 본관에서 위원회 회의를 열고 오광수(72·미술평론가) 위원장이 업무에 관한 모든 권한을 행사하도록 의결했다. 2008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문예진흥기금 운용 규정 위반 등의 이유로 해임됐다가 최근 법원으로부터 해임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김정헌(64·공주대 교수) 위원장에게는 적절한 예우를 하되 권한은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이에 반발, 회의 도중 퇴장함에 따라 두 위원장의 권한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예술위가 이날 오후 4시에 소집한 88차 위원회 회의에는 11명의 예술위원 중 두 위원장을 비롯해 9명이 참석했다. 김정헌 위원장은 회의장에 들어가기 전 기자들을 만나 "오늘 회의에서 어떤 결정이 나오든 법원 판결을 뒤엎을 수는 없다. 회의 개최 자체도 내 재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상견례나 간담회 차원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회의장을 빠져나오면서 "오늘 회의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기에 거부하고 나왔다"며 "나에게 '결재권 없음' 결정을 내리려는 것 같은데 변호사와 상의해 대처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본관 건너편에 마련된 자신의 위원장실에 머물다 오후 5시 54분 퇴근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위원회 회의는 오후 6시 55분 끝났고, 위원 중 한 명인 조운조 이화여대 교수가 회의 결과를 브리핑했다. 그는 "김정헌 위원장의 법적 지위 회복을 인정하고 고통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전제한 뒤 "혼란을 수습하는 방안으로 두 위원장의 동반 사퇴안 등을 진지하게 논의했지만 김정헌 위원장이 문화부 장관의 공식사과를 선행조건으로 요구하면서 퇴장했다"고 밝혔다. 조운조 위원은 "위원들은 오광수 위원장을 퇴장시킨 후 기관 운영의 지속성과 업무수행의 원활을 위해 오 위원장이 기관 대표권을 포함해 업무 권한을 행사하도록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면서 "김정헌 위원장에 대해서는 적절한 예우를 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조운조 위원은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퇴장했고, 윤정국 예술위 사무처장은 전화통화에서 "김정헌 위원장에 대한 예우는 차량·비서·업무추진비"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차량과 업무추진비는 문화부와 협의하고 기획재정부가 승인해야 하는 사안이다. 윤 사무처장은 김정헌 위원장의 '회의 무효' 주장에 대해 "두 위원장 중 누구나 회의 소집이 가능하기 때문에 법적 효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강력 반발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신재민 문화부 1차관은 지난 4일 "예술위 위원회 회의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부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고한 상태이며, 최근 변호인단을 교체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예총 이사와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지냈고 노무현 정부 말기에 임명된 김정헌 위원장의 법적 임기는 오는 9월까지이다.
입력 2010.02.09. 02:51업데이트 2010.02.0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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