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정상회의(11일)를 하루 앞두고 EU 주요국들이 그리스 사태 해결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신들도 "EU 내에서 그리스 지원에 대한 원칙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긴급뉴스를 타전하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 독일이 양자 혹은 EU 차원의 그리스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독일이 다른 EU 회원국들과 함께 그리스에 대한 대출 보증 계획을 검토하고 있으며, 볼프강 쇼이블레 장관이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이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Sarkozy) 대통령은 10일 엘리제궁에서 그리스 파판드레우(Papandreou) 총리와 회동, 그리스 사태의 해결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경제장관은 "그리스 사태가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해, 구체적 해법이 강구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호아킨 알무니아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이 9일 유럽의회에서 "IMF의 도움은 필요 없으며, (그리스가) 유럽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 점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유럽 주요국의 움직임이 부산해지고 그리스 지원설이 확산되면서, 9일 미국과 유럽 증시는 급등세로 반전했다. 연일 추락하던 유로화 가치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EU 차원의 그리스 지원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사안이다. EU 입장에선 같은 유로화를 쓰는 회원국(그리스)의 국가부도 사태를 방치할 수 없다. 그리스의 부도는 유로화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을 촉발, 단일 통화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법 모색 과정에서 EU가 뜸을 들인 것은 그리스에 대한 지원이 도덕적 해이가 심한 '불량 회원 구제'라는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1년 EU 회원국이 된 그리스는 회원국이 되기 위해 국가부채 통계를 조작했다. 회원국이 된 후에도 재정개혁 작업을 등한시하고 선심정책을 남발하며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해 왔다.
선심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연금제도를 꼽을 수 있다. 그리스의 연금제도는 30개 OECD국가 중 가장 후하다. 임금대비 연금수령액 비율이 95%에 달해 영국(30%) 독일(37%), 프랑스(50%)에 비해 훨씬 높다. 연금액 산정의 기준이 되는 근무기간도 다른 EU국가들은 '전체 근무기간'을 적용하지만 그리스는 '퇴직전 5년'을 기준으로 한다. 이런 연금제도 때문에 그리스의 사회보장비용 지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18%로 다른 회원국(OECD 평균치는 15%)보다 훨씬 높다.
반면 국민들 사이에 탈세가 일상화돼 상위 소득자 20%는 연소득 10만 유로(약 1억6000만원)의 고소득을 올리지만, 세무당국에 연 10만 유로 이상을 번다고 신고한 사람은 전체 국민(1100만명)의 0.15%인 1만5000명에 불과하다. 그리스 감사원 분석에 따르면 그리스 국민들의 한해 탈세액은 310억 유로(약 50조원·2007년 기준)로, GDP의 14%에 달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역대 그리스 정부는 법인세·개인소득세 인하 등의 선심정책을 남발, 국가 재정을 더 악화시켜왔다.
EU 입장에선 재정적자 비율을 GDP의 3% 이내로 관리해야 하는 룰을 전혀 지키지 않고, 국제 금융시장에서 유로화 국채 발행을 남발해 온 그리스는 '공공의 적'이다. 3% 룰을 지키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온 독일 등 다른 회원국들은 그리스에 대해 '도덕적 해이'의 극치라고 비난하며 연금제도 개혁과 공무원 임금 삭감 등 초강도 긴축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11일 EU 정상회의에서 그리스 국가부채에 대한 EU 차원의 지급보증 등 지원안이 나오더라도 '강도 높은 군살빼기' 조건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