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배우(The Actor)'가 지난달 22일 한 관람객에 의해 파손돼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피카소의 작품 '배우'는 캔버스 오른쪽 아랫부분이 15㎝가량 찢어졌다. 이 그림의 가격은 1억3000만달러(한화 약 1500억원)로 추정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사고가 일어난 직후 작품을 미술관 보존실로 옮겼다.

미술관측은 "작품의 주요 부분이 손상되지 않아 수주일 내에 복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 작품은 4월 27일부터 열리는 피카소 회고전에 전시될 예정이었다. 이런 사건은 해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작년 10월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이 밝힌 '2008년 소장품 상태조사 현황'에 따르면 7000여점의 소장품 가운데 211점을 조사해보니 훼손율이 58%에 달했다. 120점가량이 원형을 잃은 것이다.

우리는 이런 작품들을 어떻게 복원하고 있을까. 국립현대미술관은 작년 여름 조각가 윤승욱의 조각 '피리 부는 소녀' 석고 원판에 내시경을 넣었다.

미술품 복원은 또 하나의 미술품을 복원하는 과정이다. 복원 중인 윤승욱의 '피리 부는 소녀' (사진 왼쪽)와 복원을 마친 파블로 피카소의 '배우'.

'피리 부는 소녀'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일반인들에게도 낯익은 작품이다. 내시경에 보인 석고 원판의 내부는 처참했다. 다리 부분이 뒤틀려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당장이라도 X-레이를 찍어야 했다.

현대미술관의 보존과학실은 작품을 바로 조각 수복실로 가져갔다. 보존과학실엔 유화(油畵) 수복실, 조각(彫刻) 수복실, 지류(紙類) 수복실, 재질분석실 등이 있어 손상된 작품을 특성에 맞춰 회복시킨다.

'피리 부는 소녀' 다리에 철심을 박고 보강재를 넣어주는 복원 작업은 작년 여름 시작돼 올 3월 끝난다. 김겸 보존과학실장은 "1937년 작품이라 자연 노화됐다고 볼 수 있지만 관람객 부주의로 손상된 작품도 꽤 있다"고 말했다.

배낭을 메고 있던 관람객이 돌아서다 작품 끝을 긁고 지나가거나 어린아이가 작품을 만지다가 손상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보존과학실 직원이 현장에 가 작품의 상태를 기록한 뒤 작품에 맞는 수복실로 옮긴다.

유화는 운반 중 떨어뜨리거나 작품을 지나치게 흔들면 표면이 갈라지면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작품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작품을 복원하는 데는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1년 넘게 걸린다.

하루 만에 끝나는 작업은 주로 작품 외부에 이물질이 살짝 묻은 경우로 작품에 맞는 특수한 용제(溶劑)로 닦아내면 된다. 반면 유화나 조각 작품은 복원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유화는 그림 위에 코팅제가 발라져 있는 경우가 많아 먼지가 유화에 앉으면 화학적 결합을 일으켜 색이 누렇게 변한다. 이럴 땐 면봉으로 '클리닝'을 해주는데, 조심스러운 작업이어서 하루에 손바닥 한 뼘 정도만 할 수 있다.

조각은 작품 안에 조각을 지탱해 주는 중심 뼈대가 있는데 시간이 오래되면 낡아져 안에 있는 중심 뼈대를 교체해 줘야 한다. 5년 전만 해도 현대 미술품 복원이나 수복 작업은 작가가 직접 하거나 미술대 출신들이 했다.

우리나라에 미술복원 전문과정이 없고 작품을 만든 작가가 작품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업을 할 때 약품을 강하게 사용하거나 손상되지 않은 부분에까지 실수로 손을 대는 경우도 있었다.

김 보존과학실장은 "미술품 복원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 4년 전부터 해외에서 미술복원 전문과정을 거친 전문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미술복원 전문가의 수는 10명 정도에 불과하다.

현대 미술품들은 과거 작품보다 보존하기 어렵다. 옛 작품들은 템페라(물감의 일종), 린시드 유(식물성 건성유) 등 자연에서 추출한 것을 써 쉽게 변형되지 않지만 현대 미술에 사용되는 것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