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라도 이호석 어머니(한명심ㆍ50)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시고 끊거나, 전화 연결 자체가 안되던 어머니가 22일 오전엔 전화를 받아주셨습니다. "모든 언론사의 요청에 다 거절해왔는데..."라며 곤란해 하시다가 어느 시점에서 마음이 움직이셨는지, 사진 촬영은 안된다는 조건으로 조금씩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주셨습니다. 때론 자식 마음을 본인 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어머니의 말을 통해 이호석이 어떤 마음으로 뛰었는지를 들어봤습니다.

21일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선에서 아들이 2위로 피니시라인을 통과할 때. 어머니는 TV 앞에 없었다. 큰 경기가 있을 때마다 다니는 작은 암자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어제는 도저히 못보겠더라고요. 경기 끝나고 재방송 되는 걸 보고 또 봤어요. 걱정했던 것 보다 잘 하더라고요."

동계올림픽에서 3번째 은메달. 금메달도 가능했던 레이스였기에 일각에선 양보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호석이한테 문자가 왔었어요. '좀 아쉽겠지만 최선을 다했다. 힘들다'고요. 평소 보다 좀 빨리 움직여서 체력 소모가 컸던듯 해요. 평소엔 늘 마지막을 노리는 아이였는데. 이번엔 심적으로 그런 것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앞 선수들이 너무 잘 타니까 더 기다렸다가는 못 나올까봐 마음이 급했을 것도 같고요. 정수가 잘 한건데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죠. (정수가) 나이가 어려서 그런 지 기운이 좋더라고요."

14일로 돌아가 1500m 레이스에서 이호석 선수는 왜 무리하게 치고 들어갔을까. "평소에 저렇게 타는 애가 아닌데 너무 안 움직여 왜 저러나 했어요. 게임이 너무 안 풀려 미치는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결승하면서 날을 4번 부딪혔다네요. 한바퀴 돌고 날이 부딪히니까 멍했었다고. 날이 그러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까 다급해져요. 1000m 때처럼 호석인 막판에 아웃으로 나갔다가 인으로 치고 들어오는 스타일인데 날이 망가지니 아웃은 포기하고 인으로만 기회를 노렸겠죠. 그러다 시백이가 약간 벌려놨을 때 아웃으로 나가는 줄 알고 그 자리에 들어간 것 같아요. 기회만 노리고 있었으니 그게 얼마나 커 보였겠어요."

집안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닌데다 안현수에 가려 2인자 소리를 들어왔던 터라 이번에는 특히나 금메달 욕심이 컸다. "애들 아빠가 섬유사업을 했는데 잘 안되서 호석이가 가장 역할을 많이 했어요. 어려서부터 상금을 많이 타고 토리노 때 잘해서 돈이 좀 나오는 게 있는데 한 푼도 안 갖고 늘 집에 내놨어요. 토리노 때 탄 포상금으로 조그만 차(프라이드)를 한 대 사서 몰고 다녀요. 본인이 상금 타서 탄 거라고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는지. 이번에 잘 하면 그 차는 제가 갖고, 차를 바꾸기로 했었어요."

그러나 올림픽을 전후로 내내 베스트 컨디션이 아니었다. 지난해말 부상으로 두달 가까이 훈련을 못하고 재활을 했기 때문이다. "발에 계란만한 물집이 생겨도 말 안하고 혼자 스폰지 붙이고 운동하는 아인데. 복숭아뼈에 금이 갔는데 그것 때문에 출전을 못할까봐 불안감이 컸어요. 공백을 메우려고 더욱 운동을 열심히 했죠. 기록 내려고 점심도 덜 먹고. 오른발에는 얼음주머니 차고 왼발로 운전하면서 집이랑 선수촌만 오가며 살았어요. 가슴이 아픈 게 한국에서 너무 무리를 해서 가서 지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쇼트트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상처주고 상처받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생긴다. 다만 얼마나 중요한 대회냐에 따라 논란의 정도가 달라진다. 작년 세계선수권대회 때는 이호석이 종합우승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안현수가 무리하게 엉덩이를 눌러 이호석이 넘어지면서 종합 2위로 내려앉고 안현수는 실격을 당했다. 당시엔 안현수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다고.

이번과 마찬가지로 국내 경기 때 이호석이 팀플레이를 하다 욕을 먹은 적도 있었다. "쇼트트랙에선 팀플레이가 없을 수가 없어요. 같이 올라가면 서로 도와주면서 할 수 있으니까요. 호석이는 이미 점수를 따놔서 다른 선수 좀 막아주고 도와준 적이 있는데 누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거예요. 동료를 위해 희생한 건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세상에 이렇게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항간에서 떠도는 파벌 얘기에 대해서도 펄쩍 뛴다. "토리노 이후 없어졌어요. 시백이와 정수 다 같이 호석이 차 타고 밥도 먹으러 다니고. 저희들끼리 얼마나 잘 어울리는데요."

경기 없는 날도 어머니는 요즘 매일 불공을 드린다. "시백이가 500m를 제일 잘해요. 우리 아들은 스타트가 늦어서 500m 결승도 쉽지 않고요. 시백이 어머니나 저나 다 평소 우리 아들이라고 얘기하고 지내요. 하지만 사람 마음은 다 똑같잖아요. 어머니도, 시백이도 다 괜찮다고 하지만 속으로야 얼마나 속상하고 응어리가 남겠어요. 시백이가 (27일) 500m에서 꼭 메달을 따서 그런 마음이 풀리고 우리 호석이도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