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가 22일, 1979년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79년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다뤄진 한미 정상회담, 박 전 대통령 서거, 12·12 쿠데타 등으로 한국 현대사가 요동쳤던 해였다. 이날 공개된 문서와 다른 자료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주한미군 철수를 저지하라"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를 강행하려는 카터 전 대통령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7월 카터 전 대통령 방한시 대대적인 환영 인파를 조직하고 만찬 때는 카터 전 대통령의 고향 노래인 '그리운 조지아주'도 연주했다. 박 전 대통령은 회담에서 미군 문제를 언급하지 말아 달라는 미국 측의 부탁에도, 45분간 미군 철수의 부당성을 연설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발언 중 자신의 참모들에게 "이렇게 나오면 정말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메모를 건네기도 했고, 비공식 대화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정치범 석방을 요구했다. 미국은 회담 직후인 7월 20일 "미군의 추가 철수를 81년까지 연기한다"며 사실상 철군 계획을 백지화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후 박 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주한미군 철수 연기 결정이 미국에서도 환영을 받고 있다"며 "한국을 배제한 미·북 간 접촉은 없을 것"이라며 안심을 시켰다. 그러나 "한국도 군 전력을 향상시키길 기대한다" "정치범 86명 석방을 환영하지만, 나머지 정치범의 석방도 기대한다"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우회적 압력을 넣었다. 박 전 대통령의 친서는 이날 공개되지 않았다.
◆蘇, 10·26 美 배후說 언급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각국 정상들은 조문을 보내 박 전 대통령의 경제 업적을 칭송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한국 경제를 놀랄 만큼 발전시킨 역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고,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도 "박 대통령의 서거는 한국민에게 커다란 손실"이라고 했다. 멜리 주한 터키 대사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전 대표에게 "추앙받는 당신 아버지의 비극적 서거에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한편 당시 소련 외무차관은 주소련 일본 대사에게 "박 대통령은 미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KCIA(중정) 부장에게 살해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12·12에 불쾌한 미국
12월 12일 신군부에 의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체포되자 미국은 외교채널을 통해 불만을 표시했다. 14일 홀부르크 미 국무부 차관보는 주미 한국대사를 불러 "군 지휘체계가 흔들리면 김일성이 군사적 모험을 강행할 수 있다"고 했고,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도 19일 박동진 외무장관을 만나 "한국군이 미군과 상의 없이 병력을 이동해 한미 연합군의 군사적 유효성을 크게 훼손했다"고 경고했다. 그는 "연합사의 작전통제권 위반은 놀라울 정도"라고도 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 장군을 만나 "이번 사태는 남한군 내에 위험천만한 사례를 남겼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