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밴쿠버]김연아, '부담감은 버리고!'

'피겨여왕' 김연아(20. 고려대)가 한국에 사상 첫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을 선사했다.

김연아는 26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50.06점을 얻어 쇼트프로그램(78.50점)과 합해 총 228.56점을 획득, 역대 최고점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는 1908년 한국에 피겨스케이팅이 도입된 이후 102년만에 나온 첫 올림픽 메달이다. 한국이 3명의 피겨 선수를 처음으로 동계올림픽에 출전시킨 1968년 그레노블 동계올림픽 이후 42년만에 나온 쾌거다.

한국이 동계올림픽 피겨에 선수를 출전시킨 것은 1968년 그레노블 동계올림픽이 처음이었다. 당시 이해정 감독이 남자 싱글의 이광영과 여자 싱글의 김혜경, 이현주를 이끌고 피겨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당시 이광영은 최하위에 머물렀고, 이현주와 김혜경이 32명 중 각각 30위, 31위에 그치며 세계의 높은 벽을 느껴야 했다.

이후 한국은 꾸준히 올림픽에 피겨 선수들을 출전시켰다.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에는 한국 최초 여자 피겨 챔피언인 홍용명이 제자 장명수를 이끌고 출전했고, 4년 후에는 윤효진이 인스부르크 땅을 밟았다.

성적은 미미했다. 한국에서 각종 선수권대회 우승을 휩쓸었던 장명수는 최하위에 그쳤다. 1976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에서 출전한 윤효진의 순위는 20명 가운데 17위였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는 이번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곽민정의 코치를 맡은 신혜숙이 선수로 나섰다. 신혜숙 코치는 어릴 적 김연아를 지도하기도 했다.

1970년대 유학파인 신혜숙은 국내 대회와 일본관동학생선수권대회 우승을 휩쓰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1980년 동계올림픽에서는 20위를 기록, 세계의 벽을 넘지 못했다.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은 피겨에 여자 선수 1명과 남자 선수 1명을 파견했다. 김혜성과 조재형도 올림픽에서는 하위권에 머물렀다.

4년 후 정성일과 변성진이 각각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과 여자 싱글에 출전했다. 정성일과 변성진은 각각 22위, 27위를 차지했다.

이후 정성일은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과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도 출전해 한국의 간판으로 거듭났다.

정성일은 1992년과 1994년 올림픽에서 각각 21위, 17위로 그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으나 1985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8위, 1987년 같은 대회에서 6위를 차지하며 선전했다. 1991년에는 삿포로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은메달을 수확, 한국 피겨 사상 처음으로 국제대회 메달을 따낸 주인공이 됐다.

여자 싱글에서는 1992년과 1994년에 각각 이은희와 이윤정이 대표로 나섰다.

이은희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를 비롯한 국제 대회에서 순위를 끌어올렸으나 올림픽에서는 28위를 기록, 세계의 벽에 막혔다.

이윤정도 1993년과 1994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각각 14위, 16위로 다소 나아진 성적을 냈으나 올림픽에서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의 기량 차이를 느끼고 돌아와야 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는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이규혁의 동생인 이규현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규현을 지도한 것은 어머니 이인숙이었다.

1996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13위, 주니어챔피언시리즈 9위에 올라 태극마크를 달았던 이규현은 올림픽에서는 24위를 기록, 메달과는 상당히 먼 성적을 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는 한국 피겨 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올림픽에 파견됐다.

특히 관심을 모은 것은 자력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박빛나였다. 하지만 박빛나는 쇼트프로그램에서 27명 중 26위에 그쳐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펼치지도 못했다.

2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한 이규현도 쇼트프로그램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양태화-이천군 조는 한국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아이스댄싱 무대를 밟았으나 최하위에 머무르며 참가에 의의를 둔 채 대회를 끝내야 했다.

늘 세계의 높은 벽을 느껴야 했던 한국의 희망은 김연아였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단 한 명의 피겨 선수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한국에는 세계를 지배할 '피겨 신동'이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주니어 무대를 평정한 김연아는 이미 한국에 '역사'를 안겨 줄 채비를 마쳤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이 끝난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시니어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김연아는 그랑프리 파이널과 세계선수권대회, 4대륙선수권대회 등 각종 굵직한 대회를 석권하며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떠올랐다.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싱글 사상 최초로 200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며 '피겨 여왕'으로 올라선 김연아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피겨 여제'로 거듭났다.

김연아의 금메달로 한국 피겨도 42년간의 도전에 절정을 맛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