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法頂) 스님.

'무소유(無所有)'를 가르친 법정(法頂) 스님은 11일 입적(入寂)할 때까지 무소유를 몸소 실천했다. 스님이 평생 30여권의 책을 펴내 받은 인세(印稅) 수십억원을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던 사실이 12일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1979년 어느 날 법정 스님은 자신의 수필집 '무소유' 출간을 기획했던 수필가 박연구(2003년 작고)씨에게 "내 책(무소유) 인세를 좀 주지"라고 말했다. 범우사는 1976년 문고본 '무소유' 출판을 계약하면서 법정 스님에게 원고료를 한꺼번에 지급했던 터라 인세를 줄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당황하는 박씨에게 스님은 "내가 좋은 일 좀 해보려고 해"라고 말했다. 출판사는 책 판매액의 10%를 인세로 지급하기 시작했다. 출판사는 30여년간 문고본과 양장본을 합해 340만부 정도 팔린 '무소유'의 책 인세가 1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범우사 윤형두(74) 회장은 "30여년 동안 '좋은 일'이 무엇인지는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1970년대부터 법정 스님이 연재한 글을 묶어 출판한 '샘터'(대표 김성구)도 1년에 2000만~3000만원씩을 인세로 스님에게 지급했다. 매년 2월 말, 3월 초만 되면 스님은 인세 지급을 채근했다. 출판사측은 나중에야 스님이 매년 초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인세 수입으로 대학생 10여명에게 장학금을 준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출판사 문학의숲 고세규 대표도 "두달 전쯤 스님과 가깝게 지내는 문학인으로부터 '스님이 10여년 전에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는 한 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셨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법정 스님은 1994년부터 봉사활동 시민모임인 '맑고 향기롭게'와 함께 '형편이 어려운 중·고등학생들의 학비를 내주자'며 매년 수십명씩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는 의무교육대상이 된 중학생을 제외하고 고등학생만 지원했다. 스님과 '맑고 향기롭게' 회원들이 모은 돈으로 매년 20~40명의 고교생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맑고 향기롭게'측은 "매년 4000만~5000만원 정도 되는 장학금의 상당 부분을 스님께서 내셨다"고 밝혔다.

'맑고 향기롭게'의 지광거사는 "스님은 얼굴 없이 대가도 바라지 않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실천하신 분"이라고 했다. 무상보시는 자기가 남을 돕고도 그 사실도 잊어버리는 높은 경지의 기부를 뜻한다. 지광거사는 "스님께서는 통장에 일정 금액이 모이면 곧바로 기부하셔서 구체적인 내용을 아는 이가 없다"고 했다. 30여년 동안 수백명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았지만, 스님은 장학금 봉투나 증서 어디에도 이름을 내걸지 않았다. '맑고 향기롭게'를 통한 장학금에도 스님은 '나 개인이 아니라 맑고 향기롭게 회원으로 기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광거사는 "스님은 마치 샘물이 차오를 때마다 퍼내듯 기부를 하셨다"며 "그렇게 하다 보니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당장 돈이 없어서 길상사에서 빌린 뒤에 갚으실 정도였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삶은 1994년 한 강연에서 말한 대로였다. "선행이란 내가 잠시 맡아 가지고 있던 것을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