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제국(Persian Empire, 기원전 55 0~330년)은 지금의 이란 고지대를 중심으로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지방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통치하던 고대 제국을 일컫는다. '페르시아'라는 명칭은 고대부터 서양인들 사이에서 이란 민족, 혹은 이란 민족에 의한 고대제국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현대 이란의 팔레비 왕조(1925~1979)까지 페르시아 제국의 명맥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신바빌로니아 왕국(기원전 626~539년)의 수도로, 네부카드네자르 2세(재위 기원전 605~562년)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찬사를 보냈던 도시 '바빌론'(Babylon)은 기원전 539년에 페르시아 제국의 시조인 키루스 대왕(재위 기원전 559~530년)에게 점령당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뒤를 이은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마지막 황제, 나보니두스(재위 기원전 556~539년)의 실정으로 키루스 대왕은 바빌론에 거의 무혈 입성했다.

'페르시아 이모탈', 이란의 슈시(Shush) 다리우스 대왕 궁전 발견, 유약을 발라 구운 채색 벽돌 부조, 기원전 510년경,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소장.

◆다리우스 대왕과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

키루스 대왕은 이란인들에게는 '건국의 아버지'다. 그는 나뉘어 있던 2개의 이란왕국을 통합, 페르시아 제국의 기초를 다졌다. 그의 치세 동안 페르시아는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의 대부분을 정복하고 동아시아의 인도까지 진출했다. 29년 동안 통치하면서 메디아, 신바빌로니아, 리디아 제국을 정복하고 이집트만 정복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는데,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 정복에 성공해 대제국을 이뤘다.

이후 기원전 521년 12월에 왕위에 오른 다리우스 1세(Darius I, 재위 기원전 521~486년)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Xerxses, 재위 기원전 486~466년)가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500년 경 세계 최대의 제국을 형성했고, 이후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과 벌인 이수스 전투(기원전 333년)에서 패하기 전까지 대제국의 영화를 누렸다.

위대한 공적을 세워 '다리우스 대왕'으로 불리는 다리우스 1세는 재위 기간 동안 유럽에서 아시아 인도에 이르는 정복지와 페르시아 도시에 활발한 건축 사업을 벌였다. 도로공사를 하고 도시를 정비하고 기념비와 화려한 궁전을 세웠다. 당시 만들어진 엄청난 규모의 유적과 황금빛의 찬란한 유물은 현재까지 남아 있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활약한 페르시아 이모탈

다리우스 1세와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가 통치하던 시기,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가 격돌하는데 이를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라 부른다. 올림픽의 마라톤 경기로 유명한 아테네 마라톤 평야에서의 전투와 스파르타 군사 300명이 끝까지 항전한 테르모필레 전투, 살라미스 해전 등이 벌어졌다. 비록 그리스 원정에는 실패했지만 당시 전쟁에서 활약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친위대이자 호위 무사들의 모습이 바빌론에 세워진 '이슈타르 문'과 겨울궁전으로 사용한 수사(Susa)의 다리우스 대왕의 궁전에 남아있다.

다리우스 대왕 궁전 벽화에 묘사된 페르시아 병사들은 '페르시아 이모탈(Persian Immortals)'이라고 불린다. '페르시아 이모탈'은 페르시아 제국의 호위무사 부대로 불사조 또는 불멸의 군대라는 뜻을 가졌다.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정예부대다. '이모탈'이라는 이름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의 기록에 따른 것으로, 다리우스 대왕이 만든 최강의 부대로 왕의 신뢰를 받는 지휘자를 포함, 언제나 1만 명의 규모를 유지했다고 한다.

최혜원 블루로터스 아트디렉터

그들은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군사들로 조직된 최정예 부대로 화려한 페르시아 전통 복장을 하고 있으며 활과 짧은 창과 단검, 방패들을 지니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왕을 경호할 때 1000명은 창 대신 황금으로 만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왕 가까이 섰으며, 나머지 9000명은 은으로 만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이들 주위를 에워쌌다고 한다. 이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많지 않아 실제로 존재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군대와 전쟁을 했던 것에서 그리스 역사가들은 그들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꽤 최근까지 이란 왕조에서도 '이모탈' 부대의 명칭을 사용했다.

※더 생각해볼 거리

몇 년 전 영화 '300'이 화제였던 적이 있다. 이 영화가 바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테르모필레 전투'를 소재로 한 것이다. 30만 대군의 페르시아 군대와 맞서 싸운 스파르타의 300명의 정예부대 이야기를 다루면서 멋지고 용맹하게 나온 스파르타 군인과는 대조적으로 페르시아의 '이모탈'은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다소 과장되고 심하게 보면 흉물스러운 괴물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서양의 문명을 대표하는 그리스에 비해 동방의 페르시아 군대는 왜 야만적으로 표현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