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대학 최연혜(54) 총장과 철도 마니아 한우진(33)씨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서울역에서 만났다. 철도계에서 두 사람은 유명인이다. 최 총장은 철도공사(코레일) 부사장 출신이다. 서울대 독문과를 나와 독일 만하임경영대에서 운수경영으로 박사가 됐다. 마니아 한씨는 포항공대를 졸업했고 생업은 '매그나칩반도체'의 주임연구원이다. 철도전문 블로그(blog.naver.com/ianhan)도 운영하는데, 스스로 '교통평론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최연혜=우리나라는 철도에 대한 관심이 너무 적어요. 독일은 남자 아이들의 장래 희망 절반이 철도기관사거든요. 영국은 '토마스'라는 기차 캐릭터를 세계적으로 키웠고, 일본도 알아주는 철도 강국이잖아요. 여러 해 전에 한우진씨처럼 전문가 수준의 마니아들이 있다는 걸 알고 너무 반가웠어요.

한우진=대표적인 동호회가 3~4개 됩니다. 제 블로그 하루 방문객은 300~400명 정도고요. 대부분 제 또래들이죠. 일본의 마니아들은 한국 철도 여행기를 자기 홈피에 올리기도 해요. 철도를 다채롭게 발전시킨 일본이 참 부러워요. 이용객이 줄어도 어떻게든 노선을 살리려고 애쓰는 것도 우리와 다르고요.

=언제부턴가 TV나 영화에서도 철도는 사라지고 승용차만 남았어요. 젊은 세대에게 어필이 잘 안 되는 거죠.

=사실은, 철도가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많아요.

최연혜 총장(사진 오른쪽)은“‘젊은 사람이 철도에 관심이 깊구나’하는 반가운 마음에 한씨의 블로그를 방문해 철도 이용객들의 반응도 살핀다”고 했다. 한씨는“철도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철도대학은 늘 나의 로망”이라고 했다.

=요즘 세계는 녹색혁명 여파로 철도 붐이 일고 있어요. 자원고갈이나 교통사고 같은 사회비용을 최소화해주는 점에서 철도가 21세기형 교통이기 때문이죠. 잘 짜인 철도망은 복지국가의 상징 같은 거예요. 특히 통일시대의 철도는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가장 효율적 수단이 될 겁니다.

=그런 장점이 충분히 알려지지 못했어요. 조금만 이용객이 줄면 노선을 걷어내니 불만이에요. KTX도 역세권이 활성화돼 도시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하지만, 그게 철도 투자로는 연결이 안 되니까 아쉬워요.

=한우진씨는 왜 철도에 관심을 갖게 됐죠?

=어릴 적부터 열차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새 지하철이 개통되면 일부러 타보고, 다음엔 어디에 건설하면 좋을지 생각하며 혼자서 가상 노선도를 그려보곤 했어요. 대학에 들어가 PC통신으로 동호인들을 만나면서 더 깊게 빠졌어요. 우리 철도의 불편한 점들을 모니터링도 하고요. 철도는 열차·운행·노선 같은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야 하잖아요. 공학도로서 그런 데서 매력을 느꼈어요.

=전 독일에서 공부할 때 철도에 빠졌죠. 분단된 국토의 통합에 있어서 철도가 큰 이슈였어요. 동독과 서독이라는 두 공룡이 철도를 통해 합쳐지는 걸 봤죠.

=여러 나라 철도를 경험하셨죠? 부러워요.

=시베리아 횡단철도도 두 번 탔어요. 여행기를 썼는데 러시아어로도 번역중입니다. 철도를 타면 구석구석 누비며 한 나라를 여러 각도에서 만날 수 있죠. 열차 안에서 사람 사는 모습도 보고요. 그뿐인가요. 철도는 이제 첨단기술의 집약체입니다. 지금 각국이 시속 570㎞라는 한계를 깨려고 경쟁이 치열해요.

=철도에서 고위직 여성은 정말 드물잖아요.

=여직원은 8% 정도 돼요. 얼핏 남성적이고 거친 직종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안 그래요. 다감하고 실력 위주여서 여성이 도전할 만한 분야예요. 한우진씨는 동호인 많이 만나죠? 어떤 얘기들이 나오나요?

=젊은 층을 위한 '내일로 티켓' 같은 좋은 상품을 내놔도 이용객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교통상품만 만들었을 뿐, 젊은이들이 혹할 만한 '문화상품'으로 홍보하질 못해서 그래요.

=그런 점을 동호회가 좀 보완해 주세요. 철도 정보를 이용자 입장에서 안내하는 거죠. 이 역은 뭐가 편하고, 뭘 해보면 좋고 이런 정보요. 한우진씨 같은 전문가가 다리 역할을 해주면 좋겠어요.

=동호인들끼리 종이로 철도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고, 철도와 역 정보를 담은 달력도 만들었어요. '레일리스트(Railist)'라는 잡지도 만들었죠. 다들 직장인이라 자주 발행하진 못하지만 최근 제2호를 냈어요. 여기 하나 드릴게요. 우린 스스로 '주경야철(晝耕夜鐵)'이라고 말해요. 낮에는 생업, 밤에는 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