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아토피가 심해요' '피부가 더러워 죽겠어요'….답/'여수 애양원 병원 가보세요. 치료비도 싸고 잘 봐요.'인터넷에 이와 비슷한 질문과 답이 여럿 올라 있다. 현장 확인차, 9일 전남 여수 공항 인근에 위치한 여수애양병원에 찾아갔다.

이곳은 사회복지법인 애양원의 의료기관으로 1909년 미국 남장로교회의 지원으로 광주에서 문을 연 한국 최초의 나병 환자 치료소가 그 뿌리다. 오전 9시 30분, 휴가철인데도 피부과 앞에 환자 수십 명이 대기 중이다. "난 발톱 무좀 때문에. 피부과는 옛날부터 여그가 잘 봐요."(순천에서 온 50대) 나이가 많을수록, 유사한 반응이 줄을 이었다. 한센병에 걸리면 맨 먼저 피부에 이상이 온다. 하긴, 최악의 피부병을 100년이나 봐왔으니 '비방(秘方)'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 역시 입소문은 정확하다,고 생각할 뻔했다. 김인권(58) 여수애양병원장에게 물었다.

―이 병원이 피부병 치료에 관한 비방을 갖고 있다던데요.

"아, 사람들이 참 감정적이에요. 의사들 말 안 믿고 믿고 싶은 것만 믿어요. 해방 후 미군정 시절, 소록도에 의사가 모자라 1년 코스의 의학강습소라는 것을 열었어요. 거기 나온 사람 중 일부가 돌팔이가 돼서 전국에 퍼진 거죠. 불법의료행위 하다가 나중엔 의사를 고용해 병원까지 열었어요. 그들이 퍼뜨린 것 중 하나가 한센병 치료제인 먹는 약, DDS(Diaminodispheny Sulfone:답손) 알약을 가루로 빻아 연고로 만든 거예요. 그게 특효약으로 선전됐죠. 저한테까지 그 연고 달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전국에서 몰려온 일반 환자들로 여전히 전쟁터처럼 숨가쁘게 돌아가는 여수애양병원의 선봉에 김인권 원장이 있다.

―그래도 뭔가 있지 않았으면 왜 그런 말이?

"영국 선교사들이 갖고 들어온 무좀 치료하는 물약이 유명하긴 했습니다. 제가 원장에 취임(95년)한 후, 약이 떨어져 영국 병원에 주문했습니다. 그쪽에서 '(좋은 신약 많은데) 왜 그 약을 쓰느냐'고 황당해합디다. '환자들이 원한다'고 부탁해 5드럼 사왔습니다. 그런데 99년 말, 의약분업이 본격 시행되면서 그걸 더 이상 줄 수 없게 됐어요. 그 후 떼쓰는 환자들에게만 무료로 좀 나눠 줬지요. 아무튼 어느 약국이나 병원에 비밀스러운 처방이 있다고 하는 건 대부분 믿을 게 못 됩니다."

―그럼 왜 가만히 계세요?

"제가 나서서 인터넷에다 '그게 아니에요'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네요. 하지만 피부과 선생님이 이 말씀 들으면 펄쩍 뛰시겠습니다.

"에이, 비방이 없다는 얘기죠. 오래전부터 난치성 피부병 환자들이 많이 찾아오고, 그걸 열심히 진료하니 의사들 실력이 뛰어난 건 사실입니다."

정직한 취재원은 때로 기자를 허탈하게 만든다. '비방'에 대한 환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김 원장이 오후 2시부터 수술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병원 부속 역사관을 견학했다. 환자들과 역대 원장의 치료 모습과 의료기구는 물론 소소한 생활용품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빈티지 작품처럼 오래된 휠체어. 요즘도 환자들이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장 인상적인 역사관의 소장품은 재수술 받는 환자의 몸에서 빼낸 인공관절을 모아 놓은 아크릴 통이었다. 사골뼈를 닮은 인공고관절, 귤만한 무릎관절이 수백개 쌓인 모습은 엽기적 설치작품처럼 보였다. 김 원장이 모아 놓은 것들이다.

한상인 행정국장은 "서울 어느 병원이 인공관절 수술을 가장 많이 했다고 했지만, 계산방식이 달라 그렇지 우리가 결코 밀릴 수치가 아니"라며 "1976년 서울대병원의 인공관절 수술이 '최초'로 기록됐지만, 이 병원에서는 앞서 73년 미국인 도성래(Stanley C. Topple) 원장이 무릎 인공관절 수술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 병원이 수술비가 싸다는 얘기가 있는데'라고 물었더니 그가 답했다. "지난달 무릎 수술한 환자가 퇴원하면서 낸 돈이 평균 130만원(다인실 기준)쯤 됩니다. 우리는 MRI 안 찍고, 수액 같은 것도 수술 전 한 번만 놔줍니다." 병실을 둘러봤다. 두 달 전 신축한 신관병실은 깔끔했고, 바다나 정원이 창으로 보였다. 여기 1인 병실이 4만7000원이다. 도시 병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다.

김인권 원장이 수술을 마치고 나온 것은 오후 4시 30분경.

―2시에 들어가서 몇건이나 하셨습니까. 오전에도 수술하셨나요?

"무릎 둘, 고관절 둘, 발가락 기형…. 7건 했네요. 오전에는 척추, 무릎 등 10건 했고. 17건입니다."

―다른 병원 의사도 이렇습니까. 어떻게 가능하지요?

"제가 좀 빨리합니다. 그나마 여름엔 수술이 적은 편인데…. 하긴 일본 의사들이 견학 왔다가 혀를 내두르긴 합디다. 전쟁터 같은 시스템 때문에 가능해요. 마취의도, 집도의도 다 현장에 대기했다가 바로바로 끝냅니다. 사실 수술시간보다 기다리며 시간이 허비돼요. 8시간 근무했다고 퇴근하고, 교대하는 거 없습니다. 그날 환자 다 끝나야 집에 갑니다."(이 병원은 정형외과, 피부과, 내과 3과 모두 마찬가지다.)

―아니, 여긴 노조 없습니까?

"없습니다. 정부에서 노조 없으면 불법이라며 노사위원회라도 만들라 합디다."

―왜 그렇게 서두르십니까?

"90년쯤인가, 인공관절 수급이 어려워 대기자 명단이 아주 길었어요. 3개월 후 수술이 잡힌 환자가 안 와요. 그 사이 자살했답니다. 10여년간 무릎 아픈 걸 참아놓고, 3개월은 더 못 기다린 거죠. 충격받았어요. 환자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가 부지런하면 가능하다 생각했어요."

―MRI(대개 수십만원이다) 쓰지 않고도 진단이 잘 됩니까? 급이 떨어지는 재료를 쓰는 건 아닌지요?

"근육 통증 진단엔 MRI가 필요하지만, 뼈 닳은 건 X레이로 다 보여요. 흔히들 인공관절을 두고 '이건 반영구적이다' '영구적이다'고 선전하는데, 거짓말이에요. 관절이나 인공관절이나 '구두'처럼 아끼면 오래 쓰고, 안 그러면 빨리 닳아요.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재료로 다른 병원과 똑같은 거 씁니다. 의료보험 약 쓰고, 쓸데없는 입원기간 줄이면 다른 병원의 3분의 1에서 절반이면 됩니다. 그런데 환자들 요구 조건이 나날이 까다로워져 좀 힘들어요. "

―까다롭기론 한센병환자도 만만치 않다던데요. 마음에 상처가 많아서 오히려 더.

"대개 1~2년차 간호사들이 환자들한테 극진하게 해줘요. 그러면 외려 환자들이 싫어해요. 나는 수십년 앓아왔는데, 동정심 때문에 참견하는 걸 못 참겠다 하는 거죠. 의사도 잘 안 믿어요. 77년 전공의 시절, 군복무 대신 소록도에서 근무하던 때예요. 한센병으로 손이 굽은 환자 수술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용택이라는 환자를 꾀었죠. 수술하자고. 그런데 계속 싫대요. 78년 크리스마스 날, 용택이가 메탄 알코올로 술을 만들어 먹이는 바람에 한명은 즉사하고, 다른 사람도 곧 죽게 됐어요. 용택이만 멀쩡했는데, 수술하고 누워 있으면 적어도 몰매는 안 맞겠다 싶어서 저에게 수술을 해달라고 했어요. 다행히 결과가 좋았죠(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김 원장은 80년부터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 치료를 시작, 환자와의 인연이 올해로 30년째다. 83년부터 이 병원에 근무했고, 95년 원장에 취임했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병실로도 유명한 여수애양병원. 나환자 치료의 보금자리였지 만 최근엔 정형외과 수술, 일반 피부과 진료로 명성이 높다.

―의사도 겉모습이 흉한 환자 보면 충격을 받지요?

"77년에 처음 봤을 땐, 싫었어요. 그래도 내가 크리스천인데 하고 내색 안 하니 한 달 만에 괜찮아졌어요. 사람마다 다르긴 해요. 환자 만지기 싫어 장갑을 끼고 진료하던 의사는 임기 마치고 돌아가면서, 입던 옷까지 다 버리고 갔더군요. 하지만 소록도에서는 간호사-환자 커플이 7쌍이나 나왔어요. 환자와의 관계도 연애와 같아요. 처음엔 얼굴만 보지만 좀 지나면 그건 안보여요."

―그런데 왜 소록도에 계속 계시지 않고요?

"병에도 유행이 있어요. 나환자는 70년대부터 급격히 줄었고, 외과수술의 관심사는 소아마비 교정수술이었어요. 70년대, 서울대학병원의 소아마비 수술비가 한 번에 500만원이 넘었어요. 어마어마한 돈인데 그것도 여러 번 해야 하니, 부잣집에서도 엄두를 못 냈어요. 그런데 애양병원에선 78만원을 받으니 사람들이 중복수술하고 상태가 아주 좋아집디다. 이 병원에 오면 정말 수술은 원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한센병 기형환자, 소아마비 환자를 거쳐 이제 인공관절 수술 환자까지, 이렇게 27년째다. 워커홀릭을 넘어 '메저키스트(피학증)' 수준으로 일에 빠진 김 원장에 대해 직원들에게 물어봤다. 남자직원들 대답은 "아내에게 보여주기 싫다"였다. 인물 좋고, 인품은 더 훌륭하고, 수술 잘하고, 검소하고….그러나 무엇보다, 가혹한 그의 경영방식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는 것은 가장 혹사당하는 이가 원장 자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피부병 비방'을 찾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남이 아니라 자신에게 채찍을 내리는 자, 가장 무서운 사람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