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의 중산층 가정 자녀 최은정(19)씨는 작년까지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면티 차림으로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띄워 '몸짱'으로 유명해지자 기획사 대표 심영규(36)씨가 계약금 300만원에 전속 계약을 맺자고 했다. 2년간 최소 3회 이상 비키니·속옷·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성인화보를 찍고 회당 200만원씩 받는 조건이었다. 최씨의 어머니도 허락했다.
기획사는 지난 2월 최씨의 화보를 공개하면서 "첫 여고생 성인화보 모델이 나왔다"고 홍보했다. 최씨의 화보는 온라인 화보 다운로드 1위를 차지했고, 정가 2만8000원짜리 화보집도 1억원어치 넘게 팔렸다.
심 대표는 "미성년자의 섹시한 몸을 부각시킨 상품이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생산·유통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는 최씨보다 한 살 어린 고3 여학생과 계약을 마쳤고, 94년생 고1 여학생도 접촉 중이다.
◆"사회적 컨센서스 마련해야"
10대의 노출은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까. 백희영 여성가족부 장관은 23일 기자들과 만나 "미성년자 연예인·연예지망생의 노출에 대해 사회적 컨센서스를 마련할 때가 됐다"며 어린이·청소년 연예인과 연예지망생 103명(남성 53명, 여성 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를 공개했다.
여성가족부가 청소년정책분석평가센터에 의뢰한 조사에서 여자 어린이·청소년의 12.2%(41명 중 5명), 남자 어린이·청소년의 8.5%(47명 중 4명)가 "다리·가슴·허리 등 신체 특정 부위를 노출한 적이 있다"고 했다. 노출을 경험한 여자 응답자는 5명 중 3명이 "노출을 강요당했다"고 했다.
백 장관은 "최근 수년간 미성년자 연예인들이 대거 대중스타로 부상했지만, 국가의 법규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령 방송법은 어린이·청소년이 '시청자'인 경우를 전제로 '음란·퇴폐·폭력을 조장해선 안 된다'고 규정할 뿐, 어린이·청소년이 음란·퇴폐·폭력의 주역인 경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음란·퇴폐·폭력의 범위와 수위(水位)도 모호하다.
심 대표는 "공중파 방송에서 '꿀벅지 선발대회'를 열고 여고생 걸그룹 멤버가 골반춤을 추는 마당에 여고생 성인화보를 문제 삼는 것은 이중잣대"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실제로 국내 공중파 방송은 미성년자의 선정적인 춤과 노래를 여과 없이 방송해왔다. 지난달 24일 MBC '세바퀴'에서는 걸그룹 '포미닛'의 현아(18)가 격렬한 골반 댄스를 추고, 중년 남성 연예인들이 "염통에 이상이 왔다" 등의 감탄사를 내뱉었다.
◆노골적인 '섹시미' 경쟁
본지가 1997년 이후 인기를 끈 주요 걸그룹들을 분석한 결과, 갈수록 노골적으로 '어린 나이'와 '섹시한 몸·춤'을 강조하는 걸그룹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과거 걸그룹들은 귀여운 이미지에서 출발해 20대에 접어들어 섹시한 이미지로 넘어갔지만, 2009년 이후 등장한 걸그룹들은 절반 이상이 데뷔 때부터 섹시함을 강조하고 있다.
가요평론가 '김작가'(필명)씨는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성공한 뒤, 후발 걸그룹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의 걸그룹은 대부분 '벗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식이고, 방송 카메라 역시 10대 여자 가수가 춤출 때 전신을 잡는 대신 하반신·가슴만 잡을 정도로 자극적"이라며 "그런데도 지금 연예계와 방송계에는 이런 부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