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9일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을 깜짝 방문해 하루 일정을 소화했다. 전날 밤 중국측 고위 인사들의 환송을 받으며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역을 출발한 것까지는 확인됐으나 이후 24시간 가까이 소재파악이 안 돼 혼선을 빚기도 했다.
김정일은 지난 26일 지린시에서 김일성 주석의 모교인 위원(毓文)중학과 베이산(北山)공원 항일유적지를 방문한 데 이어 하얼빈에서도 김일성의 혁명유적지를 찾은 것으로 전해져 이번 방문의 목적 중 하나인 '김씨 왕조 성지(聖地) 순례'를 이어갔다. 이 지역의 발달한 기계 영농 현장도 둘러본 것으로 전해졌다.
◆하얼빈서도 '숲속의 숙소' 택해
창춘역을 출발한 김정일 일행은 이날 새벽 0시를 전후해 북동쪽으로 250㎞가량 떨어진 하얼빈에 도착했다. 숙소는 도심 내 외국 국빈들이 주로 묵는 화위안춘(花園春)호텔이 아니라 쑹화(松花)강 안에 있는 여름 휴양지 타이양다오(太陽島)의 국빈관으로 정했다. 국빈관 주변은 경찰이 10m 간격으로 1명씩 늘어서서 철통 같은 경비가 이뤄지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은 전했다. 한 소식통은 "국빈관은 숲에 둘러싸여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곳"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은 앞서 지린시와 창춘시에서도 외부 접근이 힘든 숙소만 골라 묵은 바 있다. 방중 기간 내내 '철통 보안'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하얼빈에서는 하얼빈이공대와 비행기계공단, 농업기계박람회 등을 방문했다. 또 김일성의 유적지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얼빈은 김일성의 동지인 김혁이 빨치산 운동을 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돼 사망한 곳으로, 생전에 김일성도 들렀던 곳이다. 김정일은 이곳에 살고 있는 김혁의 자손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저녁에는 헤이룽장성 최고 지도부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일이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헤이룽장을 방문한 것은 귀국길의 북한 내 철도가 폭우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일 묵은 난후호텔 종업원, "후 주석 왔다고 들어"
지난 27일 김정일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창춘 난후(南湖)호텔은 29일 다시 일반에 개방됐다.
본관과 6동 현관 앞의 계단과 마당에는 의전 용도로 쓰이는 붉은색 대형 카펫이 깔려 있었다. 정상회담 장소였을 가능성이 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종업원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후 주석이 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다음날인 28일 오전 9시 5분쯤에는 난후호텔 정문으로 의전차량 20대와 40대가 나란히 나오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베이징 소식통은 "두 정상이 같은 호텔에서 묵었다"며 "이런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견인 트럭에 실려간 벤츠 리무진
28일 오후 8시쯤, 시내 중심가의 창춘역에는 중국 공안의 견인 트럭에 실린 벤츠 리무진 차량이 들어왔다. 김정일 일행의 승용차 본대가 들어오기 1시간 전쯤이었다. 5분 뒤쯤 리무진 차량을 내려놓은 견인 트럭은 다시 역을 빠져나갔다. 베이징 번호판을 단 이 리무진은 김정일이 지린·창춘에서 사용해온 방탄 차량이다.
이 차량은 이날 낮 갑자기 고장을 일으켜 김정일은 이날 오후 예정된 '창춘 제1기차(汽車·자동차)'공장 방문을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소식통은 "방탄차가 고장 나 대체 차량을 고민하다 결국 제1기차 참관을 포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