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부터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는 〈춘추(春秋)〉전(展)은 한국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김홍주를 비롯해 윤석남·정현·신학철·이세현 등 국내 현대 작가 11명의 작품과 고려 불화 등 12점의 고미술을 작품 성격에 맞게 짝을 지어 전시하고 있다. 학고재 갤러리의 김지연 큐레이터는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함께 보면서 밑에서 흐르고 있는 전통의 맥, 한국 미술의 뿌리가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김홍주의 회화 작품 〈무제〉는 석파 이하응의 묵란(墨蘭)과 한 쌍을 이뤘다. 김홍주가 그리는 행위 자체를 통해 몰입과 무념의 세계를 보여주듯, 간결한 선으로 경지를 드러내고자 했던 석파의 묵란이 서로의 영역을 해치지 않았다. 버려진 개를 목조각으로 제작한 윤석남의 작품은 마장(馬場)에서 자유롭게 뛰놀고 있는 말을 그린 조선시대 초기 작품 〈방목도(放牧圖)〉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정현의 버려진 나무를 이용한 조각 작품 〈무제〉는 정학교의 〈죽석도〉와 함께 세워졌다. 정현의 조각 작품에서 감지되는 힘과 기가 인상적이다.
전시장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고려 불화로 추정되는 〈암굴수월관음도〉로, 이용백의 회화 작품 〈플라스틱 피쉬〉와 나란히 걸렸다. 학고재 갤러리 우찬규 대표는 "〈암굴수월관음도〉는 국내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라며 "전문가가 고려 말기 작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용백의 〈플라스틱 피쉬〉는 낚시 미끼로 이용하는 '플라스틱 피쉬'가 진짜 물고기보다 더 진짜 같은 부조리한 세상을 그렸다. 부처의 가르침을 구하는 〈암굴수월관음도〉와 부조리한 세상을 보여주는 현대 작품이 함께 걸려 묘한 느낌을 던져준다.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와 〈인왕산도〉는 각각 이세현의 회화작품과 정주영의 〈인왕산도〉와 함께 걸렸다. 정선이 보여주는 힘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한국의 산수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작가들의 해석이 볼만하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이어진다. (02)720-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