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쇼트트랙은 2010년 쑥밭이 됐다. 선수에게 출전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하고 승부를 조작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나올 수 있는 온갖 추잡한 수법이 총동원된 것도 모자라 코치와 선수가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는 '막장 링크'의 진수를 보여줬다.

밴쿠버올림픽 2관왕 이정수(단국대)는 "전 코치가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그러자 전재목 전(前) 대표팀 코치는 "이정수가 대표 선발전 때 '도와달라'고 부탁해서 생긴 일"이라고 맞받아쳤다.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주축이던 이정수(오른쪽)와 곽윤기는‘승부 조작 파문’으로 올 시즌 국제대회 출전이 무산됐다.

사연은 복잡하지만 요지는 이정수의 대표 선발 때 도움을 줬기 때문에 그 대가로 '양보'를 요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지도자와 선수의 비난전에 대표팀 동료들도 뛰어들어 상대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였다.

릴레이 기자회견이 열리고 여론을 동원하려는 언론 플레이가 이어졌다. 빙판이 진흙탕처럼 변하자 대한빙상경기연맹은 5월 이정수와 곽윤기(연세대)에게 '자격 정지 3년', 전재목씨에겐 '영구 제명'이란 중징계를 내렸다.

둘에 대한 징계는 두 달 만인 7월 '자격 정지 6개월'로 줄었지만 이정수와 곽윤기는 물의를 일으킨 책임으로 올림픽 메달 포상금도 날렸다. 밴쿠버에서 금 2, 은 1개를 딴 이정수가 본 손실은 2억원에 가깝다.

이정수와 곽윤기는 18일부터 성남빙상장에서 열리는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도 출전하지 못한다.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U 대회, 세계선수권 등 2010~2011시즌 국제 대회에 출전할 길이 막힌 것이다.

둘이 빠졌지만 다행히 남자 대표팀은 여전히 세계 정상권이다. 손세원 성남시청 감독은 "남자는 워낙 선수층이 두텁다. 바늘구멍 같은 국내 선발전을 통과한 선수라면 세계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한다"고 했다.

승부 조작 파문의 결과는 대표 선발전 방식의 변화였다. 1차 선발전에서 종목별 상위 24명을 뽑고 10월에 치를 2·3차 선발전은 타임 레이스로 최종 인원을 선발한다. 타임 레이스란 일정 구간의 스피드를 겨루는 방식이다.

이는 기록을 재 특정 선수 밀어주기 같은 '담합의 싹'을 근본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새 방식이 만점짜리는 아니다. 빙상 관계자는 "쇼트트랙은 태생적으로 '순위 싸움'이지 기록 종목이 아니다. 초시계로 대표를 뽑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