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잠출 울산MBC 시사담당PD·국장

가지산은 울산 7봉 중에 가장 높은 산이다. 해발 1240m이니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다. 산이 높으면 그만큼 골이 깊고 물이 맑다. 그래서인지 가지산 아래 덕현천과 소야정 계곡은 사철 내내 시리도록 맑다. 가지산 아래 첫 동네인 덕현리 사람들은 이 맑은 물을 마시며 살아왔다. 소야정 삽재 까치말리 외황고개와 행정 살티 등 작은 마을이 가지산 아래에 숨겨져 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오랜 세월 살아남은 그들만의 생존의 미학이 보인다. 조금 불편하고 돈이 적어도 도시에 없는 솔바람이 있고 달빛을 보듬고 풀 향기 가득한 가운데 느릿한 삶을 누려왔다. 울주군 상북면 가지산 아래 덕현리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덕현리

덕현리(德峴里)는 본래 석남동(石南洞)이라 했다. 동쪽에 고헌산, 북쪽으로 운문재와 서쪽의 가지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가지산 쌀바위에서 시작된 물이 처음으로 적시는 마을이다. 운문재와 석남고개 등 높고 큰 고개 아래 있어 덕현이라 했다. 석남사가 있어 석남이라 하거나 조선시대(세종) 사철이 많이 난다해서 석남동(石南洞)이라 했다는 기록도 있다.

운문재는 덕현리에서 북서쪽 방향에 있는 청도 가는 고갯길(해발 1107m)이다. 가슬갑사라는 절 때문에 가슬현이라고도 했다. 가슬갑사(加瑟岬寺)는 원광법사가 신라의 사량부(沙梁部) 출신 화랑이었던 귀산(貴山)과 추항에게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전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세속오계는 신라 화랑들의 정신을 지배했던 계율로 삼국 통일의 기반이었다는 해석이 있다. 그만큼 가슬갑사가 있는 가지산 일대의 가치는 중요하고 무겁다.

석남사 위쪽으로 이어지는 산길. 길 옆에 늘어선 키 높이의 경관 가로등 아래로 가을 낙엽이 제법 흩어져 운치를 더하고 있다.

◆행정마을엔 우물을 파지 않아

석남사 일주문 앞 마을이 행정(杏亭)이다. 행정은 살구나무가 정자를 이루고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살구정 마을 앞 동남쪽 들판은 꼬두박샘이라 부른다. 옛날에 깊은 우물이 있었는데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자주 생겨 우물을 메웠다. 살구정 마을이 배의 중심부에 해당하는데 그렇게 보면 소호고개는 뱃머리(船首)이고, 배내고개가 배 후미(後尾)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풍수 해석에 따라 배 가운데에 뚫린 샘을 메우고 그 자리에 돛대를 세운 뒤 제사를 지내니 순풍에 안긴 배처럼 평안해졌다는 얘기가 전한다. 지금도 이 마을에는 우물을 파지 않는다 한다.

◆산이 둘러싼 높은 곳, 살티

석남사 주차장에서 울밀선 위쪽으로 잠시 걸으면 도로 아래편으로 살티마을이 있다. 살티(矢峴)는 독특한 지명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화살을 만들었다 해서 살티라 했다는 말이 있지만 원래 '티'는 고원(高原)이나 언덕배기, 큰 고개를 뜻한다. 그러니 살티란 말은 산이 둘러싼 높은 곳이란 뜻이다.

살티는 울산·부산·경남지역 천주교의 중요한 성지이기도 하다. 1860년대 부산지방 첫 공소인 간월공소에 살던 천주교인들이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모여들면서 만든 신앙 공동체였다. '박해를 피해서 살 만한 곳'이란 뜻으로 살티라 했다. 주변의 간월공소·대재공소·죽림굴 등 천주교 성지와 함께 살티공소와 순교자 성지가 조성돼 있다. 공소(公所)는 로마 가톨릭교에서 본당(本堂)에 속하는 공식적 교회 단위로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지역 신자들의 모임이나 교우들의 모임 장소인 강당(講堂)을 가리키는 말이다. 130여년 세월 동안 살티공소는 많은 순교자와 성직자, 수도자를 배출했다. 특히 김영제 베드로와 아가다 남매의 순교는 유명하다. 김영제는 양반 출신이었지만 모든 것을 버린 위대한 순교자였다. 최양업 신부와 함께 간월공소와 살티공소를 설립해 신앙을 전파한 분이다.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지냈던 살티마을에 조성된 천주교 성지. 여성 참배객이 가을 햇살 아래서 성지 조형물을 살펴보고 있다.

◆국도로 갈려 인적 드문 소야정

덕현리 맨 아래 마을이 소야정(所也亭)이다. 소호의 옛 이름인 소야와 같은 말로 수리나 봉우리를 뜻한다. 이곳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송어나 향어 등 민물고기 양식이 유명했다. 솔숲 사이 평상에서 민물생선회를 참 많이도 먹었다. 횟집이 문을 닫고 썰렁한 마을로 변했지만 솔숲과 하천만은 옛 모습 그대로 지즐대고 있다. 하지만 국도 주변부와 마을 입구가 모텔 천지다. 거기다 새로 난 24번 국도가 마을을 둘로 갈라 놓은 채 빠르게 지나고 있다.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오직 속도와 차를 위한 도로이다. 도대체 길은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이 날까? 24번 국도는 울산의 성남동 옛 상업은행 앞을 기점으로 국내 국도 터널 중에서 최장인 가지산 터널을 지나 전남 신안군 바다까지 이어진다.

◆태화강 걷기도 마무리할 때

벌써 10월 하순이다. 사람들은 내년도 달력을 준비하고 휴일 수를 계산한다. 하지만 가지산 그늘 아래 느릿한 덕현리에는 다양한 풍경들을 선보인다. 보드라운 강이지풀을 스쳐 지나면 가냘픈 코스모스를 만나고 어느새 악착같이 덤비는 가시덩굴이 바지에 착 달라붙는다. 산동네 안을 걸으면 마른 풀과 열매가 발에 밟힌다. 해질녘이면 함초롬히 이슬이 바짓가랑이를 적시기도 한다. 댕댕이덩굴, 까마중은 말라 비틀어진 가지에 까만 열매를 늘어뜨리고 있다. 순환을 위한 겨울 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때에 딱 들어맞는다는 '시중(時中)'이라 표현해야 하나? 하늘이 정해놓은 때에 들어맞게 행하는 것이란 말이다. 계절에 맞게 싹을 틔우고 푸른 잎과 가지를 펼치고 정해진 때에 맞추어 충실하게 열매를 맺으니 그것이 시중이다.

가지산 아래에 살며 변화무쌍의 세월을 견뎌온 덕현리 사람들-그 세월 동안 세상의 관심이나 특별한 보살핌이 없어도 그들은 잘 지내왔다. 이 산촌에는 겨울이 더 빨리 찾아올 것이다. 시나브로 태화강 걷기도 마무리할 때다. 겨울이 오기 전에 태화강 발원지인 가지산에 올라 쌀바위의 마르지 않는 수원(水源)을 확인해야 한다. 그런 다음 추사의 세한도를 화두로 겨울을 보내면 된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의 참뜻을 새기며 추위를 견디는 것이다. 추사 선생은 어렵고 힘든 유배생활을 추운 겨울(歲寒)에 비유해 '겨울이 되어서야 솔과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는 '후조(後凋)'의 정신을 강조했다. '어려울 때 곁에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란 말과 같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