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티아라. 사진제공=코어콘텐츠미디어

인터뷰할 때면 빠지지 않는 질문 중의 하나가 '곡을 먼저 써 놓고 가수에 맞춰주느냐 아니면 곡 의뢰가 왔을 때 그 가수에 맞춰 곡을 쓰느냐?'이다.

섹시 가수 문지은.

나 같은 경우는 신인 작곡가 때는 혼자 틈틈이 써놓은 곡들이 워낙 많아서 전자의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점점 일이 많아지고 나면서부터는 미리 작업했던 곡들은 이미 발표가 된 터라 지금은 거의 모든 곡들이 후자에 맞춰 주인을 찾게 된다.

섹시퀸 이효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히트 작곡가들의 경우 곡을 쓰기만 하면 바로 녹음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제작자들로부터 한 번에 오케이를 받을 확률이 높긴 하지만 간혹 내가 자신있어하는 곡이 거절당하고 내가 불안해하던 곡이 오히려 반응이 좋을 때도 있다.

그렇게 거절당한 곡은 그 후에 다른 가수에게 가는 경우가 있는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런 곡들이 항상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 그런 노래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바로 이기찬의 '미인'이다.

몇 년 동안 히트곡 없이 하락세를 탔던 이기찬에게 줬던 '미인'이라는 곡은 당초 이효리를 위해 썼던 곡이다. 당시 이효리 측 소속사에서는 이효리에게 어울릴만한 발라드곡을 나에게 의뢰했고 나는 '미인'을 전달했지만 소속사 측에서는 이 노래가 이효리와 어울릴까라고 고민하다 결국 거절했다. 대신 나는 또 다른 발라드곡 '그녀를 사랑하지마'를 이효리 측에 전달했다.

그리고 되돌아 왔던 '미인'이라는 곡은 이기찬이라는 멋진 주인을 만나 소위 대박이 났다.

또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도 제작자가 원래 신승훈을 염두에 두고 곡을 써오라고 해서 썼던 곡이다. 나중에 보니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승철이 부르게 되었다. 나로서는 이승철, 신승훈 모두 우리나라 최고의 보컬리스트이기 때문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곡을 주게 되었다. 결국 그해에 나는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라는 곡으로 작곡가 상을 탔다.

티아라가 부른 '너때문에 미쳐'라는 곡은 한 섹시한 이미지의 솔로 여가수 문지은을 위해 썼던 곡이었지만 우연히 티아라 소속사 대표가 듣고 너무 좋아해 티아라가 곡의 주인이 됐다.

또 올 한해 많은 패러디를 배출한 오렌지 캬라멜의 '마법소녀'라는 곡도 원래는 씨야의 정규앨범 타이틀곡으로 거의 결정된 곡이었다. 당시 오렌지 캬라멜의 이미지 메이킹 중이던 소속사 대표가 이 노래의 데모를 듣고 딱 생각했던 이미지의 곡이다 해서 씨야 측에 양해를 구한 뒤 녹음해 오렌지 캬라멜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이 되었다.

이외에도 꽤 여러 곡들이 다양한 이유로 새로운 주인을 만나면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경우가 많다.

태연&더원의 '별처럼', 이승철의 '듣고 있나요', 플라이 투더 스카이의 '구속'. VOS의 '매일매일', 씨야&다비치가 부른 '여성시대' 등 많은 곡들이 그런 경우이다.

드라마나 영화도 촬영을 앞두고 주인공이 바뀌며 대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가요계도 노래의 주인이 바뀌어 사랑받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모든 노래에는 주인이 따로 있는 것 같고, 그리고 딱 맞는 주인을 만났을 때 비로소 그 곡이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제 아무리 비싸고 예쁜 옷도 몸에 맞지 않으면 그 값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노래도 부르는 가수와 일치되어야만 히트곡이 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