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돌아왔다. 유쾌, 상쾌, 통쾌한 입담에 침체된 쇼트트랙에 희망의 빛이 보였다.
카자흐스탄 동계아시안게임(1월 30일~2월 6일)을 목전에 두고 있는 쇼트트랙대표팀 코치진의 유일한 홍일점 주민진 코치(28). 중학교 1학년 때 대표팀에 발탁된 그녀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과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여자 계주 3000m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2008년 4월이었다. 2004년 11월 물러난 김소희 전 코치 이후 3년 5개월 만에 여성 지도자로는 두 번째로 대표팀 코치에 발탁됐다. 2008~2009시즌을 치렀고, 밴쿠버올림픽 해인 2009~2010시즌에는 남자 코치에게 바통을 넘겨줬다. 그리고 1년여 만인 지난해 11월 다시 복귀했다.
아시안게임은 올림픽과 더불어 2대 동계스포츠 대제전이다. 주 코치에게 아시안게임은 지도자로서 첫 국제종합대회다. 27일 장도에 오르는 그녀를 19일 서울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만났다.
한 차례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그녀는 또 성장해 있었다. "처음 지도자가 됐을 때는 선수보다 더 긴장했어요. 매일매일 그랬던 것 같아요. '척'을 많이 했어요. 무서운 척, 지도자인 척.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권위의 옷을 벗었다. 주 코치는 "지도자라는 틀에서 벗어나서 선수와 코치의 중간지점에서 선수들과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니 너무 편안하다. 터놓고 얘기도 나누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허물없이 '누나-언니'로 지낸다. 물론 막내급 선수들에게는 때로는 무섭게도 한다"며 웃었다.
주 코치는 8월생이다. 한 여름에 태어났다. 7세 때 수영과 스케이트를 동시에 배웠다. 선택은 정반대였다. '물' 대신 '꽁꽁 언 물'의 매력에 빠졌다. 음양의 조화라고나 할까. 선수 때는 힘들어 후회도 많이 했다. 대학 2학년 때인 2003년 은퇴한 후에는 다시는 쇼트트랙을 쳐다도 보지 않겠다고 작심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마음 한 구석은 늘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로 남았다. 그 때 비로소 깨달았다. "미련이라고도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쇼트트랙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아시안게임 쇼트트랙대표팀은 '3인 코치 체제'로 운영된다. 박세우 코치(39)가 남자, 정섬근(32)-주 코치가 여자팀을 맡고 있다. '금빛 향연'을 위해 일과가 오전 6시에 시작된다. 저녁식사 때 까지 쉼표가 없다. 하루 4차례 훈련과 휴식을 반복한다. 여자의 경우 1000m와 1500m,3000m 계주 등 3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최대 적수로 꼽히는 중국의 '쇼트트랙 여제' 왕멍(26)이 출전하지 않는 것도 호재다.
주 코치는 대표팀에서 '심리치료사'로 통한다. 선수들은 스스럼없이 사적인 고민을 공유한다. 특기가 '재봉'인 주 코치는 모자를 만들어 제자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여자대표팀의 맏언니 조해리(25·고양시청)는 주 코치의 현역시절 마지막 룸메이트였다. 낮에는 '선생님', 밤에는 '언니'로 소통한다. 덕분에 쇼트트랙대표팀의 분위기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최근 태릉선수촌에 놀러 온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변천사(24)는 "너무 화기애애하다. 팀이 부드러워졌다"며 덕담을 건넸다.
주 코치는 5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다. 동계 커플 탄생이 임박했다. 예비 신랑이 바로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출신인 김홍익(29)이다. 안양 한라에서 뛴 그는 2009년 은퇴해 현재 경기도 안양 금명중을 이끌고 있다. 시아버지도 아이스하키 대표선수 출신인 김인성 서울 목동아이스하키링크 사장이다. 든든한 버팀목이다. 둘은 5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주 코치에게 신랑 자랑을 부탁하자 "합숙 때문에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다. 떨어져 있는 게 쉬운 게 아닌 데 늘 이해해줘서 고맙다"며 수줍어 했다.
쇼트트랙은 최근까지도 파벌과 승부조작의 한 유형인 '짬짜미(남모르게 자기들끼리만 짜고 하는 약속이나 수작)' 등으로 잡음이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훈련하는 것 한번 보고 얘기하세요. 얼마나 분위기가 달라졌는데요."
마지막으로 쇼트트랙의 매력을 물었다. 스릴과 스피드,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예측불허의 상황을 꼽았다.
"여성이라는 스스로의 한계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여자도 지도자로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드러움의 힘이 얼마나 큰지는 아시죠." 지도자 주민진의 비상이 기대된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