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내의 궤도에서 벗어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아니, 명왕성이란 이름에서 〈왜행성 132340〉으로 격하돼 아내의 궤도에서 퇴출당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지난주 출간된 강동수 소설집 '금발의 제니'(실천문학사)에 수록된 단편 '청조문학회 일본 방문기'에 등장한 중년 시인의 넋두리다. 시인인 '나'는 고교시절 전국의 여고생으로부터 팬레터를 받던 스타 '문청(文靑)'이었지만 지금은 아마추어 문학 지망생의 시를 돈 받고 실어주는 지방의 삼류 문예지 편집장으로 시들어간다. 고교 시절 문학 행사에서 '나'와 만난 아내는 남편이 시집(詩集)을 내는 장면을 상상하며 평생 뒷바라지를 할 각오로 그와 결혼했다. 그러나 남편이 시인의 꿈을 접고 더 나아가 문예 장사꾼으로까지 전락하자 절망에 휩싸여 이혼을 요구한다. 남편은 이혼 도장을 찍으며 '주변 궤도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천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행성의 무리에서 퇴출당한 명왕성'(219쪽)을 떠올린다.
너무 작고, 다른 행성과 궤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국제천문연맹으로부터 2006년 '태양계 9번째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퇴출된 명왕성(Pluto)이 작가들의 상상력을 통해 부활하고 있다. 한수영 장편 '플루토의 지붕', 조영아 소설집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 권정현 소설집 '굿바이! 명왕성'과 김소연 시집 '눈물이라는 뼈', 장이지 시집 '안국동 울음상점' 등 명왕성을 소재로 다룬 장편과 소설집, 시집이 지난 1~2년 사이에 출간됐다.
조영아 소설집 '명왕성이…'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초등학생 딸과 회사에서 밀려난 아빠의 이야기를 겹쳐 전개한다. 소설은 회사에서 내쫓긴 아빠의 처지를 딸이 씹다 버린 껌의 이미지로 바꿔 보여준다. 문예계간지 작가세계 지난 겨울호에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임유리 시인의 작품 '명왕성의 퇴출'도 사직을 권고받은 직장인이 텅 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장면을 스케치한다. '태양은 여전히 뜨겁고, 구겨진 넥타이를 맨 당신이 들어선다/ 책상이 있던 자리에 별자리로 빛나는 건 떠다니는 먼지들뿐/(…)/ 자신을 행성이라 믿었던 날들은 이제 어디서 찾을까(…)'
명왕성의 상상력은 '퇴출'과 '소외'라는 테마로부터 다양하게 가지를 뻗는다. 권정현 소설집 '굿바이…'에 실린 같은 제목의 단편은 성적(性的) 소수자 문제를 제기한다. 동성애자에게 오럴 섹스를 해주는 '명왕성'이라는 이름의 자판기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게이 한 쌍이 자판기를 찾아나서지만 이미 철거된 후다. 두 사람은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도 똑같아. 눈에 잘 보이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이 섞여서 이 거대한 도시를 형성하는 거지'라며 자신들을 위한 자리가 없음을 한탄한다. '청조 문학회…'에서 아내에게 버림받은 '나'는 표면적으로 퇴출의 형식이지만 이면에 흐르는 것은 순수했던 시절의 꿈을 배반당한 아내의 좌절감이기도 하다.
명왕성은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이자 달보다도 작은 체구로 인해 이전에도 존재감이 미미한 것들의 상징이 되어 왔다. 문학평론가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는 여기에 덧붙여 "'명왕성의 태양계 퇴출'이라는 천문학적 사건이 문학 안으로 들어온 것은 문학이 2000년대 들어 중산층의 붕괴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 양상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