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동에 있는 33㎡(10평) 넓이 '아시아마트'. 베트남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2~3명이 모국어로 대화를 나누며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상점 선반에는 베트남어로 된 상표가 붙어 있는 식료품과 물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하미누왓(32)씨는 "한국에 온 지 4년이 됐다"며 "외국에 있으면 외롭고 쓸쓸한데 이곳에 오면 베트남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얘기도 나눌 수 있어 마치 베트남에 있는 것 같아 너무 좋다"고 말했다.
'아시아마트'는 5년 전 처음 문을 열었다.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에서 일했던 이현숙(48)씨가 '자원봉사'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이 일대는 성동구에 사는 360여명 베트남 출신 외국인들이 1주일에도 4~5번씩 오가며 북적이는 거리. 인근에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외국 자녀에게 한국어 등을 가르치는 건강가정지원센터, 베트남에서 가져온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파는 식당이 모여 있다.
그러다 보니 '아시아마트'를 중심으로 베트남인들이 모이면서 고향 소식을 나누고 일용품도 사간다. 일이 없어 쉬는 베트남인들은 일자리 정보도 교환한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이 부근은 이른바 '왕십리 베트남타운'으로 통한 지 오래다.
이처럼 새롭게 떠오르는 외국인 타운이 서울 시내 곳곳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구로구 가리봉동 '옌벤거리', 이태원동 '무슬림타운', 연남동 '차이나타운', 반포동(서래마을) '작은 프랑스', 이촌동 '리틀 도쿄', 광희동 '몽골타운', 창신동 '네팔타운' 외에 최근 들어 용산동 인도거리, 신길동 '신길차이나타운', 독산동 '독산차이나타운', 봉천동 '봉천차이나타운', 대림동 '대림차이나타운', 자양동 '광진차이나타운', 창신동 '중국인거리', 용산동 '다국적 해방촌', 역삼동 '역삼다국적타운' 등이 이국(異國) 생활 향수를 달래는 각양각색 외국인들의 거점 노릇을 하고 있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에 사는 외국인은 166개국 25만5000여명. 서울 총 인구 1064만명의 2.4%에 해당한다. 1995년 0.4%에 비해 5배 증가한 수치. 불법 체류 인원을 더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시 추산이다.
이 외국인들이 모여 공동체(com munity)를 이룬 곳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모두 26개. 한남동과 이촌동, 이태원동이 있는 용산구가 9개로 가장 많고, 종로구와 중구가 각각 3개, 영등포구 2개 등이다. 시정개발연구원 홍석기 연구위원은 "출신 국가·민족·공간·문화·종교·언어·관습들이 유사한 사람들끼리 일정한 지역에 함께 모여 살거나 여러 활동을 하는 도시사회의 문화적 현상이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나 커뮤니티의 종류와 수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산구 용산동에는 힌두교 한 종파인 '하레 크리슈나' 사원이 있다. 서울에서 유일한 힌두교 사원이라 일요일이면 종교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인도인 40~50명으로 몰려들면서 자연스레 '인도거리'로 소문이 났다. 캘커타에서 온 카말라(43)씨는 "종교 관련 축제가 있는 날은 100명 넘게 모일 때도 있다"며 "힌두 신화 공부와 교리 토론을 하고 식사나 차를 같이하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거나 고충 등을 나눈다"고 했다.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는 용산구 일대에 살다가 일이나 주말 나들이를 위해 동대문이나 이태원 방향으로 흩어지는 태국·스리랑카 노동자들이 많이 모인다. 서울시에서 이곳에 이들을 위한 상담소를 설치할 정도다.
영등포구 대림동 지하철 대림역 출구를 나오면 온통 중국어로 쓴 간판이다. 이곳에선 중국어로 튀김, 중국식 돼지고기 요리, 개고기 요리 등을 주문한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동철(36)씨는 "대림역 근처 3동, 4동은 가리봉동 재개발 정책에 따라 가리봉에 있던 많은 중국인이 옮겨 이곳에서 차이나타운을 이뤘다"고 했다.
종로구 창신동 1호선 동대문역 부근에는 네팔 음식점이 줄지어 있다. 골목 안 100여m 길은 동대문구가 정한 '네팔거리'. 네팔식당 7개와 네팔 물품판매점 5개가 있다. 네팔 식당 '룸비니'를 운영하는 뿌루(29)씨는 "토·일요일에는 이곳에만 하루 200명의 네팔 손님이 찾는다"고 말했다.
종로구 광희동 '뉴금호타운'은 지하 1층에서부터 10층까지 모두 몽골 관련 점포로 차 있다. 휴대폰 판매점, 미용실, 음식점, 주점 등이 모두 몽골인을 대상으로 한다. 건물 앞에서 노점상을 하는 김모(50)씨는 "건물 안에서 한국어로 물어보면 모두 '몰라요'라는 대답을 듣거나 고개를 젓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