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여든이 넘은 노(老)학자다. 컴맹이다. 하지만 이 노인은 아랍권에 몰아닥친 민주화 운동의 사상적 스승이 됐고, 트위터·스마트폰이 가세한 ‘모바일 민주화 혁명’의 대부가 됐다.

주인공은 미국의 정치학자 진 샤프(Sharp·83) 박사. 그의 저서 '독재에서 민주주의로'(From Dictatorship to Democracy)가 튀니지이집트의 장기 독재를 끝낸 아랍 민주화 운동가들의 혁명지침서가 됐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6일(현지시각) 소개했다.

NYT는 "백발이고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 이 노인이 지구 반바퀴를 돌아 이집트 카이로의 타히리르 광장(시위대가 주로 모인 곳)에 영향을 끼쳤다"며 "24개 국어로 (인터넷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샤프의 저서가 미얀마, 보스니아, 에스토니아를 거쳐 튀니지이집트에까지 영감을 끼쳤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진 샤프(Sharp·83) 박사

이 신문에 따르면, 이집트의 블로거이자 활동가인 달리아 지아다(Ziada)는 수년 전 카이로에 잠입해 샤프의 저서 '비폭력 저항방법 198개'를 교본 삼아 민주주의 활동가들을 훈련시켰다.

이 책은 2009년 이란 대선 후 반정부 시위 국면에도 거론됐다. 같은해 8월 이란 검찰은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개혁파 인물 100여명에 대한 재판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샤프 박사의 198개 저항 방법 중 100개 이상이 시위대에 의해 철저히 사전 준비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공개된 미국 비밀 외교전문에 따르면 과거 시리아의 반정부 운동가들도 샤프의 저서를 통해 비폭력 투쟁을 배운 것으로 드러났다.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다 은퇴한 샤프 박사는 미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70년대 이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제3세계 운동가들은 그의 저서를 '민주화 운동의 바이블'로 꼽고 있다.

그의 책 '독재에서 민주주의로'는 93페이지에 불과한 소책자이지만 비폭력 저항운동을 통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구체적으로 방법을 알렸다. 샤프 박사는 독재정권을 붕괴시키는 방법으로 시위와 포스터, 대정부 비협력 운동 등을 제시했다. 그는 이런 방법이 사회를 마비시키고 독재자들에게 현안에 대처하지 않고는 통치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고 했다.

또 그는 단호하면서도 훈련된 정치 저항이 독재의 내부 약점을 폭로하게 만들고, 국제적 관심도 이끌 수 있다고 자신의 저서를 통해 설명했다.

한편 NYT는 그가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메일을 보내려 해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구세대'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컴맹' 노인이 트위터, 스마트폰 등이 활약한 이집트·튀니지 '모바일 혁명'의 배후를 담당했다고 소개했다.

샤프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CNN을 통해 이집트 시위 상황을 봤다"며 "하지만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이집트인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