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이 백지화로 결론이 났다. 영남권의 반발이 격렬하고,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시화됐다는 진단까지 나오는 등 후폭풍이 만만찮다. 무엇보다 대통령 스스로 공약을 어김으로써 '신뢰'가 무너진게 가장 큰 충격이다.

지난해 KTX울산역이 개통하면서 울산공항이 직격탄을 맞았다. 공항 이용객이 33%나 줄었고 항공편도 하루 2편이 줄었다. 울산공항 이용객은 지난해 10월 9만6264명이던 것이 KTX울산역이 문을 연 지난해 11월 5만8980명, 12월 5만8462명, 올 1월 5만2979명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항공사들도 항공편 줄이기에 나섰다. 대한항공은 1일 왕복 8회이던 서울행 항공편을 6편으로 줄였고 1일 왕복 4회이던 아시아나항공도 운항 편수를 절반인 2회로 감축할 예정이다. '공항 없는 도시'가 될까봐 다급해진 울산시가 저가항공사 유치와 에어택시 도입 등 공항 활성화에 나서겠다고 호들갑이다. 1970년 개장 이후 호황을 누리던 울산공항이 최대의 위기를 맞은 셈이다.

일제시대 그림엽서에 실린 삼산비행장.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장은 서울 여의도에 있었다. 1916년 일제가 중국 대륙 진출 교두보인 군용 비행장이 필요해서 만든 것이다. 오래지 않아 국제비행장도 필요해졌다. 일본과 중국을 연결하며 군수물자와 우편물을 수송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만든 것이 '울산비행장'이다. 일제는 울산 삼산평야 6만여평에 한반도 최초의 국제공항을 건설했고, 1928년 12월 2일 문을 열었다.

울산비행장은 주로 일본 후쿠오카와 중국 대련(大連)을 연결하는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는데, 일본항공이 하루 1편씩 울산과 후쿠오카현 다치아라이(太刀洗)를 왕복했다고 한다. 당시 활주로는 600m 정도였다고 하며, 현재의 남구청 네거리에서 현대백화점 앞 네거리를 연결하는 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개장 당일 울산 상공에는 평양비행연대의 정찰기 3대가 축하비행을 펼쳤고 울산 부산 기장 등지에서 5만여명의 군중이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영남 일대 최대의 구경거리였을 법하다.

이 비행장은 일제가 대구에 비행장을 신설하면서 1936년부터 불시착용 활주로 역할을 하다 곧 폐장했다. 당시 울산에서 갖은 탄원을 했지만 허사였다고 한다. 이후 1962년 울산이 공업센터로 지정되면서 임시 활주로로 사용하다가 1970년 10월 문을 연 현재의 북구 송정동 울산공항에 역할을 넘겨줬다. 그 후 송정동 울산공항도 한때 문을 닫았다가 1984년 7월부터 울산에도 민간항공이 취항하면서 재개장해 지금에 이른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이 없어서라고 한다. 앞서 개장한 전남 무안이나 강원 양양 등 국제공항은 취항 항공편이 거의 없어 활주로가 텅 비어있어 '조종사 훈련장'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한 지역의 현재 모습이 다른 지역의 미래일 수 있다'는 미래학자 존 나이스 빗의 말을 떠올려보면 신공항이 무산된데 대한 위안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