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TV맛집 소개 프로그램을둘러싼 방송계의 치부를 들춰낸 극장용 다큐 '트루맛쇼'의 한 장면. 방송에 나온 사실은 물론 나오고 싶다는 내용까지 플래카드로 내건 식당들.

텔레비전 PD 출신인 김재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트루맛쇼’는 지상파 TV의 맛집 프로그램에 얽힌 추잡한 비리를 폭로해 신문 사회면에까지 소개됐던 작품입니다. 알려진 대로 이 다큐에는 브로커에게 900만원, 1000만원을 건네고 방송을 타는 과정을 고스란히 기록한 몰카 영상이 있습니다. 식당 주인 100여명으로부터 돈을 받고 TV프로에 식당을 ‘꽂아줬다’는 ‘전설적 브로커’의 걸쭉한 육성도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금품수수 비리 못잖게 다가오는 건 지상파 방송계의 썩어빠진 환부입니다. 그것은 “프로그램 만들 때 사기를 치든 날조를 하든 경쟁사보다 시청률만 높으면 장땡"이라는 삼류 제작풍토입니다. ‘시청률지상주의’니 하는 고상한 용어를 쓰기도 아깝습니다. ‘저질 장사꾼 근성‘이라고나 할까요.

식당 주인이 돈을 건넸더니 방송 제작진들이 카메라 들고 달려오고 결국 ’맛집‘으로 매스컴을 타는 것도 경악할 일이지만, 더 놀라운 건 그 프로그램 내용의 상당 부분이 조작과 가짜로 채워진다는 사실입니다. ’트루맛쇼'는 이런 사실들을 설명하는 대신 방송 조작 ‘주범’들의 언행을 보여 주고 들려 줍니다.

출처=TV맛집 소개 프로그램을 둘러싼 방송계의 치부를 들춰낸 극장용 다큐 '트루맛쇼'의 한 장면. 방송 제작진의 요구대로 식당을 '청양고추 돈까스집'으로 급조하고 있다.

맛집 촬영 때 식당의 간판메뉴부터가 식당 쪽에서 정하는게 아닙니다. '음식 코디네이터'라는 브로커가 기상천외한 '방송용 메뉴'들을 멋대로 급조해서 식당 쪽에다 만들라고 주문합니다. "꾸며서라도 컨셉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평범한 음식으로는 프로그램도 성공 못하고 식당 선전도 안된다는 거죠.

음식을 모르는데 별난 음식을 선보여야 하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식끼리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이는 황당무계한 '찍짓기'를 합니다. 아구찜 접시 주변에 생선초밥을 둘러놓은 '아초', 삼겹살에 캐비어를 조금씩 올려 굽는 '캐비어 삼겹살', 인삼을 삼겹살과 붙인 '심봤다 삼겹살'등 괴상한 메뉴들이 만들어져 "이 집의 유명한 인기메뉴"라고 방송되는 과정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3류 사기극입니다.

이런 '방송용 메뉴'들은 대부분 방송이 끝나면 사라집니다. 길이 1m가 넘어 보이는 초대형 사각 팬에 차려내는 '대판 해물오뎅탕'이라는 급조된 메뉴는 "싸고 맛있는" 특별 메뉴로 방송을 탔지만, 이걸 믿고 찾아간 어느 시청자는 "진짜로 그렇게 드시려면 100만원쯤 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립니다.

이 다큐는 맛집 프로에서 음식점 손님중에도 얼마나 가짜가 많은지 보여줍니다. 심지어 TV에서 스타가 "나의 오랜 단골집"이라 소개한 식당 중에 단골집은커녕 촬영날 처음 가 본 집인 경우도 있습니다. 시청자 우롱이고 사기입니다. 다큐엔 어느 양식당이 브로커에게 돈을 써서 스타의 맛집으로 둔갑하는 과정이 펼쳐집니다.

단골 역할을 하기로 예정된 어느 여가수가 사정이 생기자 촬영 직전 '단골을 다른 스타로 교체한다'는 제작진의 문자메시지가 화면 가득 잡힙니다. 천연덕스럽게 단골처럼 연기하던 어느 젊은 가수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신곡 한 소절을 불러 '잇속'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맛집 프로에서 손님들이 PD나 VJ들의 요구에 따라 감탄사를 연기하는 모습들이 이 다큐의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 제작진은 가짜 손님들에게 "적극적으로 많이 오버하세요"라며 먹기 전에 연기 연습까지 시킵니다. 어느 여성 PD 가 대본을 들고 식탁을 돌아다니며 "멘트 골라서 각자 외우세요"라고 지시하다가 "그리고요, '이거 먹으면 100살까지 살거 같아요'는 누구 대사죠? "라고 확인하는 대목에선 웃음이 배어 나옵니다. 심지어 소비자 고발 프로에서 '위생 불량'으로 난타당한 음식점이 몇 달 후 같은 방송의 다른 프로에서 '대박 맛집'으로 둔갑하는 두어 개의 사례들은 블랙코미디의 절정입니다.

'도대체 이런 삼류 코미디가 왜 우리나라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반복되는 것일까' 궁금해집니다.다큐는 그 원인중의 하나가 맛집 프로들의 빗나간 시청률 경쟁 때문임을 알려줍니다.

노래가 안 되는 사람끼리 경쟁을 하면 고음 내지르기 경쟁을 하고, 능력 없는 작가들이 시청자를 잡으려할 때 '출생의 비밀'등 막장 스토리를 끌어들이듯, 제대로 된 음식 프로그램을 만들 능력도 의지도 없으니 삼류 저질쇼로 빠지는 것입니다. 능력 없는 기자가 특종의 압박에 시달린 끝에 사실을 날조해 허구의 기사를 작문해 내는 것과 다를게 없어 보입니다.

맛집 프로그램들은 식당의 돈을 받음으로써 방송 윤리를 깬 잘못 못지않게, 판에 박힌 진행과 조잡한 음식 보여 주기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TV문화를 싸구려로 끌어내린 더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브로커들보다 더 비판받아야 할 사실은 맛집 프로그램들의 왜곡된 제작 풍토를 수수방관한 방송사 책임자들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트루맛쇼'는 식당 소개 프로그램의 고발 다큐를 넘어서, 우리나라 방송풍토의 고질적 환부 하나를 과감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런데도 극장들로부터 일반적인 흥행성이 없다는 취급을 받아서인지 서울 시내에 겨우 서너 스크린에서밖에 상영하지 않습니다. 문화계의 불합리를 고쳐보려는 다큐가 불합리한 풍토의 피해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