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훈련 중인 장병에게 최근 뇌수막염이 잇따라 발생하고 일부 사망자가 나옴에 따라, 군 전염병 관리 체계에 비상이 걸렸다. 더욱이 군인들은 내무반이나 전투 막사 안에서 여러 명이 서로 밀접한 접촉을 하며 생활하는 특성 때문에 전염병 발생시 대량 환자가 발생할 수 있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초기에 전염병 의심 환자를 발견하여 신속히 격리하고 전문치료를 해야 한다. 이후 정밀한 역학조사와 방역관리를 통해 추가 환자 발생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지난 4월 논산 육군훈련소와 작년 12월 '홍천 교육대'에서 발생한 뇌수막염 사망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군 지휘관들의 전염병에 대한 안이한 인식과 부실한 전염병 관리 체계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방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재 군에서 전염병 관리 업무를 맡은 예방의학 장교는 1~3군사령부에 각 한 명씩 배치돼 있을 뿐이다. 국방부와 육군본부 등에 근무하는 예방의학 장교까지 합쳐봐야 12명 정도다. 이들이 55만 군인의 전염병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국군의학연구소에서 이뤄지는 세균과 바이러스 검사 장비나 시설도 민간의료기관보다 뒤처져 있다는 평가다.
그렇다고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의 인력과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아니다. 질병관리본부에는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방역관리 기법을 익힌 30명가량의 역학조사관이 활동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고위 관계자는 10일 "군부대에서 발생한 전염병은 주로 내부에서 해결해 왔다"며 "최근 수년간 외형상 군과 협력해 공동조사를 한 적은 몇 차례 있지만 우리가 직접 군부대에 들어가 현장조사를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이번 '뇌수막염 집단 발생 사태'처럼 군 내부 전염병 발생 현황은 외부에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군부대에서 발생한 전염병은 면회객이나 출퇴근하는 군무원 등을 통해 민간인에게도 전파될 수 있고, 오염된 지하수를 통해 인근 지역으로 퍼져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전염병 발생시에는 민·관 합동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방역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감염병 예방법 18조에 따르면, 법정 전염병 발생시 누구든지 질병관리본부장이나 시·도 지사가 실시하는 역학조사를 거부 또는 회피해서는 안 된다.
전염병 발생 초기 단계부터 장병의 건강 상태를 면밀히 관찰해 초동 조치를 취해야 할 일선 부대의 의료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간호사 자격증을 가진 간호장교는 주로 군병원에만 배치돼 있을 뿐, 대대나 연대 의무대, 심지어 수천 명의 장병을 관리하는 사단 의무대에도 없다. 장병과 함께 생활하는 의무병 등 의료보조인력 약 1만명 중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등 의료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인원은 25%뿐이다(국방부 2010년 자료). 군의료 업무를 직업으로 하는 의무부사관도 대대급에는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국방부가 이를 늘리기 위해 지난 3년간 581명의 의무부사관 채용 계획을 세웠으나, 실제는 125명을 뽑는 데 그쳤다. 근무 여건 미비로 지원자가 저조했기 때문이다. 이를 대체할 의무군무원도 국방부가 88명을 채용할 계획이었으나, 이마저도 42명에 머물렀다.
복수(複數)의 전직 국군의무사령관 의견으로는, 군 의무 관련 예산은 매번 비(非)무기 체계로 분류돼 예산 배정에서 무기 구매나 전투력 향상 분야보다 항상 뒷순위로 밀린다. 이 때문에 전염병 관리 인력이나 백신, 첨단 방역 검사 장비 확보 등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K 전 의무사령관은 "군내 전염병 문제를 군 내부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며 "국가 의료관리체계를 선진화시키는 주요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