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공직 사회의 전관예우를 막기 위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넘겼다. 앞서 지난 4월 국회는 판·검사 출신들의 전관예우를 막기 위해 변호사법을 고쳤다. 두 법 모두 허점이 많아 보완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문제는 헌법재판소다. 앞으로 퇴직 공직자 중 누군가가 공직자윤리법이나 변호사법이 위헌(違憲)이라며 소송을 낼 가능성이 큰데, 이때 헌재가 직업선택의 자유와 평등권을 들어 이들의 손을 들어주면 전관예우를 막으려는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헌재는 이미 두 번이나 그렇게 했던 전례가 있다.
1989년 헌재는 경력 15년 이내인 판·검사는 퇴직 전에 근무했던 지역에선 퇴직 후 3년간 변호사 개업을 못하도록 한 변호사법 조항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이 법이 개업지만 제한할 뿐 변호사 활동 자체를 금지한 것이 아니라서 전관예우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예컨대 서울지역 법원 출신 변호사가 개업은 수원에서 하고 실제 활동은 서울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 적용 대상을 경력 15년 이내로 해 15년 이상자와 차별한 것도 잘못이라고 했다.
정부가 이 조항을 만들 때 15년을 기준으로 한 목적은 판·검사들의 조기퇴직을 막고 장기근속을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15년이라는 근속기간을 기준으로 한 것은 차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 개업지만 제한할 뿐 개업 자체를 금지한 게 아니라서 입법 취지를 살리지 못했고 그래서 위헌이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변호사 개업 지역을 제한한 것은 제한된 지역에선 변호사 활동을 하지 말라는 취지이지, 서울 법원 출신이 수원에서 개업하고 활동은 서울에서 하는 것처럼 편법을 써도 좋다는 뜻이 아님은 상식이다.
헌재는 1997년엔 검찰총장에게 퇴임 후 2년간 공직 취임과 정당 가입을 금지한 검찰청법 조항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 조항은 검찰총장이 나중에 보다 좋은 자리에 가려고 정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소신껏 검찰을 지휘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라고 만든 것이다. 헌재는 그런 취지라면 장관 같은 공직의 취임만 금지하면 되지 국·공립 대학교수 등 학문연구직 취임까지 금지한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 것이라고 했다. 또 민주국가에서 참정권은 가장 중요한 기본권이라고 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검찰총장이다. 공직 취임과 정당 가입 금지는 그에 앞서 도입된 검찰총장 2년 임기제와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만으론 검찰총장이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할 수 있게 하는 데 부족하다는 여론에 따라 추가로 도입됐다. 검찰총장 한 사람의 기본권을 잠시 제한해서라도 검찰다운 검찰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게 국민을 위해 훨씬 더 값진 일임은 물론이다. 공직 취임과 정당 가입을 영원히 금지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 2년간 금지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헌재는 이를 과도한 기본권 제한이어서 위헌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의 종전 논리대로 한다면 공직자윤리법 개정안과 새 변호사법도 위헌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헌재가 전관예우의 폐해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바로 본다면 얼마든지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헌재의 도덕적 권위와 정당성은 그 시대 상황에서 얼마나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결정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 앞으로 헌재의 결정을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