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an(부산)'인가, 'Pusan'인가. 국어정책토론회 두 번째 주제는 로마자 표기법이다. 2000년 7월 정부는 1984년부터 써오던 로마자 표기법을 개정, 새 표기법을 고시했다. 1984년 표기법은 매퀸-라이샤워(MR) 방식에 기초한 것으로 외국인들이 구분해서 쓰는 무성음·유성음을 달리 표기하고 영어권에 없는 모음 ㅓ와 ㅡ를 특수부호를 사용해 o와 u로 표기했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어렵고 불편하다는 지적에 따라 개정된 새 표기법은 ㅂ, ㄷ, ㄱ을 유성음·무성음 구분없이 b, d, g만으로 적고, ㅍ, ㅌ, ㅋ에 p t k를 배당하는 식이다.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주최하고 국어학회·조선일보가 공동주관하는 두 번째 토론회는 7일 오후 3시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다. 이홍식·이호영(서울대 언어학) 교수와 엄익상·이성미(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교수가 각각 주제발표·토론자로 나선다. 조선닷컴 온라인 토론방을 통한 참여도 가능하다.
[Busan이다] 'ㅂ' 표기할 때 B도 쓰고 P도 쓰자고? 헷갈리고 복잡하다
2000년 로마자표기법이 개정되고 10년이 넘었는데도 표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중요한 이유로, 외국인이 이 표기대로라면 제대로 발음할 수 없다는 점을 든다. 하지만 로마자는 언어마다 읽는 방식이 다르다. 혹자는 영어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지만, 영어는 철자 발음이 가장 다양한 언어다. 이상적인 로마자 표기를 통해 한국어를 쉽게 발음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다.
'로마자표기법이 외국인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외국인의 발음을 고려해서 표기법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의 핵심은 유성음(有聲音)과 무성음을 구분하자는 것이다. 한국어에는 유·무성음이 없지만 유·무성 구분이 있는 외국어가 적지 않다. 가령 '비로봉'에서 '비'의 'ㅂ'은 무성음, '봉'의 'ㅂ'은 유성음으로 들린다. 외국인을 고려하면 'pirobong'처럼 달리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유성음·무성음이 구별되는 것인지도 따져볼 문제지만, 이를 인정한다 해도 다른 문제가 있다. 'ㅂ'에 'p'와 'b'를 배정하면 'ㅍ'은 어떻게 표기해야 하나. 'pirobong'이라 쓰면 한국인은 '피봉'이라 읽는 것도 문제다.
언어 체계가 다른 외국인에게 정확한 한국어 발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제의 해법은 로마자표기법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로마자표기법에 담은 한국어 발음 정보를 정확히 알려 주는 것이다.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 '더 많이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비용 측면에서도 바꾸지 않는 게 효율적이다. 로마자표기법의 쓰임새가 넓어졌기 때문에 또 다시 바꾸려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용이 든다. 표기법의 잦은 개정은 '어문규범'에 대한 생각을 무너뜨린다. 규범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면 된다는 생각은 규범 측면에서는 중대한 문제다. 이미 3차 개정을 거치는 동안 검토는 충분히 됐다. 더 이상 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외국인 입장에서도 한국 문헌에서 자주 고유명사 표기가 바뀐다면 한국의 어문규범을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행 로마자표기법이 최선은 아니다. 그렇다고 최선의 표기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언어 간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표기법을 어떻게 정한다 해도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데 비용과 신뢰의 부담을 감수하면서 표기법을 바꾸어야 하는지 지극히 의문이다. /이홍식·숙명여대 국문과 교수
[Pusan이다] 외국인들 "Cheju 가는데 웬 Jeju행 표?"… 국제관행 따라야
미국 도서관에서 시인 고은을 검색하려면 현행 로마자표기법에 따른 'Go Eun'이 아니라 매퀸-라이샤워(MR)법인 'Ko Un'으로 찾아야 한다. 2009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현행 표기법 보급률은 유럽·미국에서 21~22%에 불과하다. 작년 한글학회, 현대경제연구원이 국내 거주 내외국인을 조사한 결과 현행 표기법에 대한 종합평가지수는 46.89%에 불과했다. 왜 외면당하고 있을까?
첫째, 성씨 표기 규정이 없다. 인구 절반을 차지하는 김, 이, 박, 최씨는 Gim, I, Bak, Choe라고 써야 한다. 2007년 국립국어원 조사에 따르면 이렇게 쓰는 사람은 0~6.5%에 불과했다.
둘째, 띄어쓰기 규정이 없다. 남한산성입구역에는 'Namhansan seong'이라고 적혀 있는데 외국인이 쉽게 읽을 수 있을까?
셋째, 표기의 연속성이 단절됐다. MR법은 1937년 발표된 이래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2000년 새 표기법 이후 같은 인명·지명이 두 가지 이상으로 알려지게 되어 혼란을 초래했다.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부산국제영화제)'이 Busan에서 열린다고 홍보해야 하는 우스운 지경에 이르렀다. 외국인들은 Cheju(제주)를 가려는데 왜 Jeju행 표를 주는지, Joseon(조선)시대가 Choson 이전인지 이후인지 묻는다.
우리도 1948~59년과 1984~2000년에는 MR법에 기초한 표기법을 썼다. 이를 개정한 이유는 MR법이 서양인 손에 만들어졌고, 부가기호가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매퀸은 미국 선교사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당시 최고 국어학자인 최현배·정인보·김선기의 조언을 받아 표기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서양인들이 한국어 특성을 왜곡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음성 실험 분석에 의하면 MR법이 현행 표기법보다 훨씬 더 한국어 발음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며 컴퓨터 보급으로 u나 o도 쉽게 입력할 수 있다.
인명 표기와 지명의 띄어쓰기 규정도 없는 표기법을 세계인에게 권하는 것은 국제전화는 안 되지만 국내전화는 그런대로 잘 터지는 휴대전화를 외국인에게 사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더 늦기 전에 국제 표준에 맞춰야 한다. 교체에 드는 비용은 국내외 표기법의 차이에서 오는 혼동과 불편, 국가 브랜드 및 경쟁력 약화에서 오는 경제 손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엄익상·한양대 중문과 교수